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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ㅣ 아시아 문학선 16
백남룡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4월
평점 :
[도서리뷰] '벗'
- 북한 대표작가의 소설로 읽는 북한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혼 -


지은이 : 백남룡
펴낸곳 : (주)아시아
펴낸날 : 2018년 4월 25일 초판1쇄
도서가 : 12,000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전세계가 불안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 회의가 열리고 싱가포르에서 북미간 정상 회의가 예정되어 있는 등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평화로 가는 국면의 전환은 매우 좋은 일이긴 하지만 또 다시 언제 어떻게 상황이 급변하게 될지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러한 북한이 변화하게 된 원인은 더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경제상황 때문이라고들 하죠.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이후 급격하게 국가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합니다. 아사한 사람 수만 해도 삼백만명을 훌쩍 넘는다고 그랬었죠. 왜 이렇게 장황하게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고요? 그건 후기 쓰려는 책이 북한작가가 쓴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벗>이라는 소설로 제목은 단순하지만 깊은 의미가 담겼답니다. 북한에서는 '벗'이라는 단어보다는 '동무'란 말이 일반적이랍니다. 그런데 굳이 '벗'이라고 한 것은 '동무'란 단어는 이데올로기가 부여되어 본디 가지고 있던 고유의 의미가 퇴색되었기에 공동체의 삶에서 동무를 뛰어넘은 순수한 의미의 '벗'을 사용하게 된거라 책의 발문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아시아지역의 많은 문학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아시아"라는 전문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전에 이 출판사에서 출간한 계간지를 읽어 본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문예계간지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소설작품도 출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 문학선이라 하여 20편까지 출간되었더군요. 이 출판사를 영화계에 비교해서 보자면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제작하고 상영하는 영화사와 같은 존재 아닌가 싶습니다.

소설의 저자는 1949년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태어나 10여년간 공장노동자 생활을 한 후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백남룡이란 소설가입니다. 1979년 <조선문학>에 단편 "복무자들"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는데요. 대표작으로 <벗>과 <60년 후>가 있으며 프랑스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작가라고 합니다. 혹시나 해서 작가에 대해 검색을 해보았는데 놀랍게도 네O버 인물검색에도 등재되어 있더군요. <벗>과 <60년 후>는 1992년에 다른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적이 있다 나옵니다.

소설은 북한의 어문법에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에 낯선 말들이 꽤 나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 )로 부연하고 있기에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지만 남과 북의 분단의 시기가 길어질수록 언어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북한 단어 표기와 뜻풀이가 따로 정리되어 있어 남북간 어휘의 벌어진 간격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책 마지막에 수록된 발문에 따르면 이 소설은 1988년 출간되었는데 당시 북한 최대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설이기까지 했었다더군요. 소설 내용에는 당시 북한의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로 치자면 70~80년대 모습과 흡사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을 읽다 봄 북한 주민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도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고 이혼할 수 있다는 내용에선 당혹스런 느낌까지 들었죠. 북한주민들에겐 자유란 없다란 독재정권의 반공안보교육 잔재가 아직도 제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발문에선 이 소설을 북한이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사회공동체의 풍경을 담아낸 <겨레말 소설>이라고 합니다. 그것보단 리얼리즘, 사실주의 소설이라 설명해주는 부분이 가슴에 더 와닿았죠. 소설의 내용이 허구적이거나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런 스토리의 연결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민재판소 판사로 복무중인 정진우입니다. 소설은 그가 재판소에서 이혼청구서를 앞에 두고 이혼신청한 여인이 소명하길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소설의 주 내용은 정진우판사가 도 예술단의 성악배우인 채순희가 남편인 선반공 리석춘과 이혼하겠다고 제기한 이혼 신청을 심사하면서 스토리가 전개되는 사실주의적 소설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생각하며 갈등하는 채순희의 모습에서는 소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마무리는 이혼신청이 취하되고 부부가 서로 노력하며 가정을 지켜나간다는 암시와 함께 "가정은 인간의 사랑이 살고 미래가 자라는 아름다운 세계이다"라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소설내용 중 인상적인 것은 정진우 판사가 제시한 해결방안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적용되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놀라운 내용은 판사가 직접 소송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을 찾아 다니며 내용 파악을 한다는 것인데요. 남한에서는 서류로만 판단을 하는데 비해 북한에서는 판사가 직접 이웃주민과 직장에서의 평판까지도 들으러 다닌다니 놀라운 얘기죠. 소설이긴 하지만 북한 최대 베스트셀러였단 점을 감안하면 전혀 현실성 없는 내용은 아닐거라 생각되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러한 정진우 판사의 모습은 북한사회가 요구하는 최선의 인간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구요.
북한의 소설에도 꽤 수준있는 작품이 있다는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소설을 좋아하시거나 이 작품에 관심있으신 분은 백남룡 작품 한번 읽어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