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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후기]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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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김현아
펴낸곳 : (주)쌤앤파커스
발행일 : 2018년 4월 9일 초판1쇄
도서가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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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꺼리는 직업은 꽤 많지요.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 이른바 3D 직종들이 바로 그것이죠. 하지만 경찰, 소방관과 같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간호사도 그 중 하나죠. 작년 메르스 사태로 사회적으로 충격과 공황상태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당시 갈팡질팡하는 의료계와 관련 정부단체를 성토하는 분위기였었죠. 그런데 한 일간신문에서 기사화된 '간호사의 편지'로 인해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많이 알려지면서 격려와 응원으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이번 읽은 도서는 바로 그 '간호사의 편지'를 쓴 간호사분이 집필한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입니다. 제목에서부터 간호사란 직업에 대한 처절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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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과 응급실 간호사로 21년여 동안 환자를 돌봐왔다가 최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간호학을 전공으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임상간호 석사과정을 수료했다고 하구요. 책 내용중에는 원래 작가를 지망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간호사로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의 편지'의 주인공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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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머리말>, <1장. 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들>, <2장.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메르스 샅의 한가운데에서 보낸 14일>, <3장. 간호사, 그 아름답고도 슬픈 직업에 대하여>,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의 내용들이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일하면서 겪게 되는 그들만의 어려움들이 너무나 많이 나오기에 읽다 보면 가슴이 아리단 느낌이 듭니다. 물론 그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다 죽게 된 사람을 살리었을 때는 자신의 직업에 긍지와 보람을 느끼게 되기도 한답니다. 저자가 여성분이라 그런지 감성적인 글들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뭐 제 느낌이 그랬단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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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은 저자가 그동안 생각하고 품어왔던 마음을 적나라하게 펼쳐놓은 이야기들인데요. 글은 저자가 20여년 전 간호대 학생이던 5월의 어느 날 읽었다는, 간호사로 첫발을 내딪게 될 때 선서한다는 '나이팅게일 선언문'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간호사로서 살아 온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수시로 뉴스에 나오는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자살 이야기, 수익극대화만 바라 보는 병원들이 대폭 줄여버린 인력 운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갑질과 인권유린을 당해온 것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죠..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들어오는 생사를 오가는 응급환자들 챙기느라 피묻은 거즈가 쌓인 쓰레기통 옆에 몰래 숨어 쪼그리고 앉아 삶은 계란 하나로 허기를 달랬다는 경험담은 왜 간호사를 계속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게 당연하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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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나오는 사례, 분실된 응급 비품들을 간호사들이 사비를 갹출해 채워 놓는 얘기는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닙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접했던 소방관들이 소모품인 방화장갑도 각자 사비로 구매해 쓴다는 걸 보면 말입니다. 공공성을 지닌 이러한 직업군들에 대해 우리나라는 지원이란게 거의 전무한게 현실인가 봅니다. 콜센터 근무하는 상담원, 백화점 매장의 판매원, 이와 같은 감정노동자들의 자살사건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갑질사건들은 국가가 나서서 강력 처벌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승무원 응대태도를 문제삼아 무릎 꿇리고 고성지르면서 회항시켜 강제로 내리게 한 대기업 오너 첫째딸에 이어 발표가 마음에 안든다고 홍보업체 직원 얼굴에 음료 흘뿌리고 컵까지 던졌다는 갑질로 연일 방송에 오르내리는 둘째딸 얘기로 시끄러운 요즘이기에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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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간호사를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더욱 참담한 내용입니다. 오해로 흥분한 환자 보호자와 후배 간호사가 멱살을 붙잡고 난동이 벌어졌는데 바로 옆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병원 관계자들은 침묵만 지키고 있었답니다. 참다 못해 항변하려는 자신에게 오히려 조용히 있으라고 침묵을 강요했다는군요. 그 후배간호사는 멱살 붙잡힌채 끌려 나갔고 그 끌려 나간 후배간호사를 위해 나서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침묵의 강요, 후배 간호사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그런 간호사가 되었다는 자괴감, 지금껏 쌓이고 쌓였던 괴로움과 자괴감들이 이 사건으로 터져서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간호사라는 이름을 버리고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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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병원 간호사 자살사건의 원인으로 간호사들 사이의 좋지 않은 문화라는게 오르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건 "태움 문화"란 건데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혼이 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인 '태운다'에서 파생된 거 같답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쓰인다는거죠. "말도 마, 오늘도 아주 활활 탔어.", "왜 그렇게 태우고 난리야?" 저자도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선배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먹을 수 없는게 많았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런 '태운다'였다 하구요. 저자는 말합니다. "간호사도 사람이다. 사람이니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단지 혼내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온몸을 불살라 '활활 태우는' 일만이 간호사가 환자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외과응급실 간호사는 응급실에 들어오는 순간 적응기간도 없이 사람을 살려야 하는 현장에 바로 투입된답니다. 그건 병원이 수익극대화를 위해 인건비를 절감하고자 현실 대비 절대 부족한 간호 인력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랍니다. 게다가 아주 사소한 실수만으로도 사람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응급실 상황과 맞물려 선배들은 후배들을 자상하게 챙겨줄 여유가 거의 없다는군요. 그래서 일에 대해서는 후배들을 심하게 혼내는 경우가 많이 있기는 한답니다. 그들 사이에는 이런 우스개가 있답니다. "처음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걸으라는 채찍이 날아오고, 이제 걷기 시작하면 갑자기 뛰라며 재촉해 급히 뛰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날아다니라고 한다". 제 생각엔 이 말은 직장인이라면 몸소 익히 체험한 현실이란걸 알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런 상황에 있으니까요..
책은 전직 간호사가 쓴 책이니만큼 간호사들이 처한 현실과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많은 부분 할애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 저자가 직접 겪었던 '메르스 사태'의 이야기에서는 간호사들이 소방관처럼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내놓고 일한다는게 실감나더군요. 하지만 모든 간호사들이 다 이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귀찮다고 환자를 약물로 사망시킨 악랄한 간호사도 세상엔 있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을겁니다. 저자 역시 그러했던거 같구요. 책을 읽고 나니 세상이 공평하면서 서로 배려해주는 그런 문화가 정착되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죠.. 책은 간호사란 직업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왜 그들이 병원에서 보았을때 그런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구요. 이 책은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도 여러가지 방면으로 생각하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 느껴졌기에 사고하는걸 좋아하시는 분에게 추천할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