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7일이라는 구조는 미술계가 하나의 '시스템'이거나 잘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라 하위문화가 충돌하는 클러스터라는 필자의 관점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각 장은 미술의 서로 다른 정의를 보여 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미술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옥션'에서 미술은 원칙적으로 투자의 대상이며 호화품이 된다.

'비평 수업'에서는 지적인 노력을 요하는 것이며 생활이고 직업이다.

'아트페어'에서는 집착의 대상이자 여가 활동의 하나이다. 여기에서 미술은 옥션에서와는 미묘하게 다른 상품이 된다.

'미술 상'에서는 미술관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동력이자 언론 매체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미술가의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가 된다.

'작가 스튜디오'에서 미술은 위에 열거한 의미 전부다. 그런 점에서 무라카미는 사회학적으로 너무나 매력적인 존재이다.

마지막으로 '비엔날레'에서 미술은 사교와 인맥, 국제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핑계거리가 되고 무엇보다 볼 만한 전시를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구성요소가 된다. 22-23

 

 

1. 옥션

 

에이미 카펠라조에게 미술시장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녀는 어떤 감정 표현도 없이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미술은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가까워요. 워홀 작품도 어떤 건 북향에다, 빌딩 사이에 갇혀 있는 스튜디오 아파트 같고, 어떤 건 360도 전망을 확보한 펜트하우스 같아요. 하지만 시스코 주식은 어쨌든 다 똑같은 시스코 주식이죠."

 

그렇다면 낙찰 속도로 보아 이번 '황색의 인종 폭동 사건'은 펜트하우스급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로비가 리노베이션되고 몇몇 흉물스러운 것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인상이다.

 

 

앤디 워홀, 황색의 인종 폭동 사건 Mustard Race Riot

 

어찌 됐든 줄리엣 골드가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확실히 미술사에 남을 만한 걸작입니다. 그러나 컬러가 썩 매력적이진 않네요. 게다가 집에 걸기엔 너무 크고요."  64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숫자는 옥션의 모든 것이다. 품목 번호, 날짜, 응찰의 단위 금액, 낙찰가까지 옥션은 숫자로 시작해 숫자로 끝난다. 버지는 계속해서 숫자들을 줄줄이 내뱉는다. 옥션은 끊임없이 수와 연관된다. 옥션은 애매모호한 회색빛의 미술계를 명료한 흑백의 세계로 탈바꿈시킨다. 작가와 평론가, 기자들은 이 모호한 공간 속에서 왁자지껄 흥청거린다. 이 모호한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미술계를 대변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75

 

 

사람들은 처음에는 미술이 좋아서 여기 옥션 현장을 찾았겠지만, 이내 작품의 상업적 딜러 가치가 작품의 다른 의미들까지 학살해 버리는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놀라게 될 것이다. 81

 

 

2. 비평 수업

 

...필자는 창의성이란 단어로 화제를 돌렸다. 학생들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눈살을 찌푸린다. "창의성이란 단어는 정말이지 지저분한 단어라고 생각해요. 포스트 스튜디오 시간에 감히 이 단어를 쓸 생각을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어요. 모두들 비웃을 걸요. '아름답다' '숭고하다' '걸작이다' 라는 표현만큼이나 민망스러운 단어예요." 학생들 중 하나가 조롱하듯 말한다. 적어도 여기 학생들에게 있어서 창의성이란 단어는 "미술계에 전문적으로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이나 쓰는 닭살 돋는 진부한 표현"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했다. 창의성이란 가짜 영웅을 천재라고 부르는 "본질주의적" 개념에 충실한 단어이다.

아마도 창의성이란 개념은 미술대학 교과과정에 속하지 않는 모양이다.

 

..... 그런 이유로, 학생들은 처음 입학할 때 이미 창의성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즉 창의성이 문제가 되는 때는 입학 허가를 받을 때뿐이다. 114

 

 

 

3. 아트 페어

 

.... 이들이 특히 열성적으로 컬렉션하는 분야는 '신진(emergent)' 미술이다. 변화하는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된 미술을 말한다. 1980년대에 들어 아방가르드(전위)란 용어가 불편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완곡한 표현의 커팅 에지(첨단)란 표현을 쓰기 시작한다. 이제 신진미술의 잠재적 시장성이 전위예술의 실험성을 대체하고 있다. 몇몇의 선구자들이 미술운동을 주도했던 과거의 발전사적 미술사관을 밀어내고 개인의 역량이 부각되는 새로운 모델이 조명받기 시작했다. 142

 

 

... 게다가 미술과 시장 사이에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존재한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도, 또한 작가들이 공공연하게 미술시장을 작가 활동의 일부로 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좋은 작품을 판단하는 지배적인 기준으로서 손재주 (craftsmanship) 에 대한 믿음이 폐기된 이상, 오늘의 미술계는 작가성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163

 

 

 

 

 

책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첫 부분에 언급되어 구글 검색해 본 결과 마음에 쏙 든 작가님 "싸이 톰블리" Cy Twombly의 작품 몇 점.

 

 

 

 

 

 

 

Hero and Leandro

 

 

 

 

Fifty days at Ilia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칙한 예술가들 - 탁월한 사업가, 혁신가 혹은 마케팅 전략의 귀재
윌 곰퍼츠 지음, 강나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두 번째 시도는 똑같이 하지 마라.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고민하고, 평가하고, 수정하고 보완한 후, 다시 시도하라. 창조란 반복적인 과정이다.˝ p.62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붙인 한국판 제목이 과연 잘 어울리는가는 의문. 원제는 Think like an artis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책을 읽다 - 미술책 만드는 사람이 읽고 권하는 책 56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은 책의 소개글들을 먼저 읽고 나니 신뢰할 수 있는 저자의 진심어린 추천사라는 생각이 들어,
컨셉만 대충 보고 지나쳤던 많은 미술 대중교양서들을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
미술을 다룬 책이 아니라 ‘미술책‘을 권하는 책이니 도판이 많지 않은 건 흠이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아쉽긴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바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은 극히 건강한 정상인으로서 자신의 건강과 쾌락을 기뻐했다. 츠빙글리는 처음 목사로 일하면서 곧바로 사생아를 낳았고, 루터는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마누라가 싫다고 하면 하녀가 있지.‘˝ 응? 이게 칭찬할 일인가?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외모비교 부분도 츠바이크 글 같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우스트 러시아 고전산책 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김영란 옮김 / 작가정신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자신의 행복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해서 뭐하려고요? 그것은 건강과 같아서 자신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바로 그것이 있다는 증거예요.˝ p.127 파우스트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