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 - 대중문화 속 법률을 바라보는 어느 오타쿠의 시선 대중문화 속 인문학 시리즈 1
김지룡.정준옥.갈릴레오 SNC 지음 / 애플북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뉴스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법의 판결을 접하게 된다. 어린 여아를 무자비하게 성폭행하여 생식기관을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든 무자비한 성범죄자가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심실미약'으로 형편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은 뉴스가 몇 해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한 아이의 인생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은 사람이 고작 '술'을 핑계로 감형을 받을 수 있다니, 법이란 참으로 우리의 실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구나 싶었다. '술'을 마시면 자동으로 '심실미약'이 되고, 때문에 범죄를 저질러도 그건 '술'의 탓이 된다니. 참으로 쉬운 핑계가 아닐 수 없다. 비단 이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법'이란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경우는 많다. 법은 분명 다수의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왜 우리가 접하는 '법'은 우리와는 상관없이 떨어져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분명 '법'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느끼기엔 어렵고 복잡한 것이 분명하다.
 

  몇 해전, <데스노트>라는 일본 만화가 큰 인기를 얻었다. 지루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천재 소년을 만나 '데스노트'를 건네주고, 소년은 '키라'가 되어 '데스노트'를 이용하여 범죄자들을 처단한다는 것이 그 주된 이야기다. 그 처단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데스노트'에 처단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죽음의 방법만 쓰면된다. 손에 피 한방울 뭍히지 않고 범죄자를 응징한다. 분명 누군가를 죽인 것은 확실하니 '살인'이지만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니 '살인죄'를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런 경우 '키라'는 살인죄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는 이런 상황, 분명 범죄적 성격을 띄긴 하지만 범죄로서의 그 명확함이 불분명한 상황을 대중문화 속의 에피소드에서 차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데로 '키라'는 살인죄를 인정받을 것인지, 개인소유의 땅에서 잡은 포켓몬의 주인은 땅주인인지 아니면 잡은 사람인지? 영웅 스파이더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지의 여부 등 책이 다루고 있는 상황들은 어느 쪽이 유죄이고 무죄이고를 가려주기 참 어렵다. 공익을 위해 한 행동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영웅에게 너무해 보이고, 그렇다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참고 넘기라고 하는 것도 너무해 보인다. 개인 소유의 땅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에게 주인이 존재하는 것인지? 법적인 지식없이 그저 개인의 양심과 도덕으로 판결을 내리기엔 아리송한 점 투성이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는 이런 상황을 대중문화에서 차용해오므로서 독자의 호기심을 배가시킨다. 그 누구도 영화를 보면서, 만화를 보면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하지만 생각해보면 꽤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법적인 시각에서 접근함으로서 독자에게 '법'의 원리와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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