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 손맛 - 구활의 77가지 고향음식 이야기
구활 글.그림 / 이숲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씩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맛'과 '냄새'가 있다. 어떤 계기가 있어서 였던지, 아니면 아무 이유없이 그저 생각나는 것 만으로도 침 샘을 자극해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 날 저녁에는 쿰쿰한 내가 나는 묵은지를 넣고 참치까지 넣어 팔팔 끓인 김치 참치찌개가 생각이 나고, 어느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벌겋게 달아오른 국자 안에서 금새 녹아내리던 설탕과 노랗게 섞여들어가던 소다가 연상이 된다.
음식이란게 그런 것 같다. 무엇을 생각하던, 무엇을 기대하던 현재의 음식 맛은 과거의 그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어디서 봤더라? 군대시절 화장실에서 숨어 먹던 라면 맛이 그렇게나 좋아서 사회에 나온지 십 수년이 지나도 그 맛을 잊지 못했던 한 남자가 그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화장실에서 라면을 끓여먹어 보기도 했다던 우스갯 소리 같은 그 이야기가 그냥 장난으로만 지나쳐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는 그 '추억의 맛'이란 것이 단순한 '맛'이 아니라 '추억' 바로 그 자체라는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죽어도 못 잊을 어머니 손맛]은 매일신문의 주간지인 [위클리 매일]에 '구활의 고향의 맛'이란 기획으로 연재되던 글을 엮은 것으로, 작가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앞집의 순이도 못 살고, 뒷 집에 영식이도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 그 누구 하나도 뛰어나게 부자가 아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젊은 사람들 보다는 약간은 나이가 있는, 그 시대의 감성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있어서 작가가 글로 되살려내는 '우유빵'과 '보리개떡'은 여지껏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생소한 음식일 뿐이고, '꿀꿀이 죽'은 그 시대의 가난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매개체이다. 하지만 그 어둡고 살기 박했던 그 시기를 담담히 견디어 온 작가와 기성세대들은 그 음식들을 통해 과거를 추억한다. 지나간 모든 일들이 마치 포토샵으로 블러 처리를 한 듯 한 결 부드럽게 기억되는 것인지, 글을 읽는 내내 가난이 준 시련 보다는 가난이 있었기에 즐길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담담히, 때론 즐겁게 서술되어진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추억의 맛은 무엇인가 생각해봤다. 하지만 퍼뜩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같은 레시피로 같은 재료를 써서 대량으로 쏟아지는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가 내 추억의 맛이 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살아온 삶이 짧기에 아직 그 추억의 맛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가진 그 풍부한 경험과 그 풍부한 추억의 자원이 한 없이 부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