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내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를 보며 좋아했던 건 아마도 그 이야기들이 항상 예쁜 공주님과 멋진 왕자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로 끝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고난을 겪은 공주님은 멋진 왕자님이 짠!하고 나타나서 구해주는 그 뻔한 스토리는 나를 비롯한 모든 어린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고, 판타지였다. 그리고 요즘 칙릿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때문인 듯 하다. 어린시절부터 가져온 꿈 - 멋진 왕자가 나타나 고난에 빠진 착하고 예쁜 공주를 구해주고, 둘이 결혼해서 알콩달콩, 깨를 볶으며 살아간다는, 그리고 그 착하고 예쁜 공주님이 나였으면 한다는 그런 꿈.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꿔볼 그러한 꿈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무의식에 잠재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재벌 남자와 서민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지지고 볶고, 결국에 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영화로 끊임없이 재생산 해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마력을 지닌 소재가 소설로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오히려 지금에서야 인기를 끈다는 사실이 오히려 늦되보이는 현상인 듯 싶다

 

한국 문예시장에서 고료가 1억원이나 걸려있는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질만도 하다. 백영옥의 [스타일]또한 그렇게 대중에게 알려졌다. 하지만 [미실(제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아내가 결혼했다 (제 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연이어 실망을 했고, 때문에 이 문학상 수상작은 나와는 잘 안 맞는가 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3회 수상작인 [슬롯]은 물론 4회 수상작인 [스타일]에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타일]이 출간되어 나오고 연이어 나오는 기사들을 읽어보면서 어쩌면 내가 이 책을 기피하는 것은 나의 고정관념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은 내 생각보다 조금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때를 맞추어 이 책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이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같은 문학상 수상작이지만 [아내가 결혼했다]보다는 정이현의 [나의 달콤한 도시]쪽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그래, 한 번 읽어볼까?'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온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성수대교'와 관련된 트라우마를 가진 패션지 에디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신 트렌드인 스키니진 체험 특집을 위해 억지로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에디터의 모습-그녀는 궂이 살을 빼고 싶어하지 않지만, 편집장이 시키니 별 수 없다, 의사 처방없이 제니칼을 구해서라도 정해진 기한 내에 살을 빼고 멋지게 스키니 진을 소화해 내야만 한다. -이나 유명인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스토커 소리를 들어가며 구구절절 인터뷰 제안서를 만들거나, 인터뷰 대상의 기분에 맞추어 일희일비해야 하는 모습들은 분명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쪽(패션계 혹은 패션잡지 업계)의 속 모습이다. 작가 본인이 [하퍼스 바자]라는 패션잡지의 피처 에디터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만큼, 작가는 그 쪽 세계를 꽤나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직장상사와의 업적다툼과 각종 소문, 그리고 로맨스까지 잔뜩 버무려 넣었다.

 

분명 이 책은 너무나 즐거운 책이다. 제니칼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기름 섞인 방귀를 끼어대고 결정적인 순간에 화장실로 뛰어가는 다소 민망하고 내가 부끄러워지는 에피소드까지 들어있는 여성독자가 감정이입을 하여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너무나 즐겁게 책장을 넘기며 '이서정', 주인공인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지만 과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성수대교'에 관한 트라우마, 과연 그녀의 그 정신적 상처가 이 이야기 안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그녀이지만 사실은 연약한 여성이었다' 라는 점으로 '성수대교'를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사랑으로 그녀의 정신적 상처는 치유되고 그녀는 한 층 성숙해졌다는 것을 독자에게 알려 주고자한 작가의 친절한 장치에 불과했던 것인지 말이다. 하지만 뭐, 나는 그렇다. 아무려면 어떠랴... 즐겁게 읽었으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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