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다. 15인치 개미허리를 자랑하는 비비안 리 덕분에 동명의 영화는 원작보다 더 유명하다. 그래서 나도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접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스칼렛이 침대 기둥을 잡고, 흑인유모가 스칼렛의 코르셋을 힘껏 조이는 장면이다. 15인치. 다큰 성인의 허리 사이즈라고는 감히 믿을 수 없는 그 신비의 숫자가 내 머릿속을 앞도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룬뒤 상복을 입고 파티장에 참석한 스칼렛의 모습이다. 마음속으로는 춤을 추고 싶어 미칠거 같지만 상중인지라 그러지 못하고 치마속에서 열나게 스텝을 밟아대던 그모습!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레트와 스칼렛의 첫만남이다. 애슐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스칼렛과 그 모습의 전부를 지켜보았던 레트의 첫만남. 그때 그들은 아마 자신들의 연이 그리도 질기고 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아무튼 이렇게 나에게 있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 오하라의 이야기이면서도 스칼렛오하라 라는 인물 자체에는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내세울 거라고는 15인치 장장개비만한 허리사이즈와 팜므파탈적 기질이외에 그녀가 잘난게 뭔가? 싶어서이다. 나는 스칼렛보다는 레트에게 더 정이 많이갔다. 스칼렛이 폐허가 된 타라농장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까"라는 명대사를 날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레트 덕분이었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좀 능글맞기는 하지만 잘생기고 돈도 많은 남자가 날 사랑한다는데 스칼렛은 정말 배가 불러도 너무 부른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레트는 타라농장에 스칼렛을 남겨두고 떠난다. 그리고 스칼렛은 미래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과연 스칼렛과 레트는 어떻게 되었을지는 그저 독자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너무나 열화와 같아서 였을까? 이렇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정통성을 인정받은 그 후속작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이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남녀간의 지지부진한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세계적인 명작으로 추앙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남북전쟁이라는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 아메리카, 그 큰 땅떵어리를 신념의 문제로 남과 북으로 가른 동족상잔의 비극은 미국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마치 한국의 6.25와 같이. 때문에 남녀의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절대 가볍지 않고 진득하니 중심을 잡는 문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소외되었던 레트 버틀러를 중심으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좀더 깊이 파고든다.

 

농장주의 딸로 태어나 흑인 유모의 수발을 받으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스칼렛과는 달리 농장주이며 세력가의 아들로 태어난 레트 버틀러는 어린시절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노예 윌의 죽음을 지켜본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말도 안되는 노예문제에 반감을 가지고 자라나게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기대와 보장된 앞날을 거부하고 신사가 아닌 선장 버틀러가 된다. 아버지의 강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를 펴며 살아온 레트의 이야기.

스칼렛과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보다 나의 맘에 들어온 이야기는 바로 그것 이었다. '스칼렛'을 사랑한 '레트버틀러'가 아니라, 그냥 인간 '레트 버틀러'에 관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한 것이었다. 그렇게 기다렸고 고대되었던 이야기였기에 나는 그 두툼한 책을 손에 들자마자 숨쉴겨를도 없이 후다닥 읽어버리고 말았다.

스칼렛과의 달달한 사랑이야기 보다도 쓴맛나는 레트와 흑인노예제도, 남북전쟁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마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거렛 미첼도 "러트 버틀러의 사람들"을 본다면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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