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라는 것 앞에서는 나이도, 국경도 장벽이 될 수 없다. 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사랑이라는 것을 무릎꿇릴 수 있는 단 한가지가 세상에 있다면, 바로 그것은 "도덕" 혹은 "인륜"이라는 것일 것이다. 이런 "도덕"과 "인륜"에 벗어나는 금기된 사랑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사랑의 다른 이름은.. 바로 불륜.. 이다.

 

[반짝반짝 빛나는]을 읽고 나는 한동안을 에쿠니 가오리라는 여성작가에 빠져지냈다. 마치 며칠을 굶고 밥상을 받아든 사람처럼 [울 준비는 되어있다], [낙하하는 저녁], 그리고 [나의 작은새]와 [호텔 선인장]을 몰아쳐 읽어댔다. 그리고 손에 잡은 [도쿄타워]. 내가 이 책을 손에 넣은 것은 동명의 일본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이었다. 하지만, 이미 tv의 영화 소개프로그램에서 단물을 다 빼먹은 그 내용은 나를 실망시켰고, [도쿄타워]를 기점으로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나의 애정과 기대치는 하향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반짝반짝 빛나는]과 [낙하하는 저녁]에서 보여주었던 그녀의 재기발랄하고 쿨함이 이제는 점점 노쇠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무료한 휴일의 오후, 나는 그 동안 책장에 처박아 두었던 [도쿄타워]를 꺼내들었다. 1g의 기대도, 우려도 없이 그저 시간죽이기용으로 꺼내든 이 책은... 썩어도 준치.. 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토오루와 코우지는 혈기왕성한 이십대라는 공통점 말고는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부류이다. 둘 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토오루는 감성적이고 정적인 반면에 코우지는 그런 토오루에 비해서는 다분히 행동파이고 또 정열적이며 적당히 놀 줄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두 사람에게는 세상사람들이 모르는 또다른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것은 바로 연상녀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다.

 

토오루는 어머니와 10년지기인 시후미와 사귀고 있다. 17살이던 어느날 어머니의 소개로 그녀를 알게되고 지금껏 그녀에게 3번이나 "생일 축하해"라는 말을 들었다. 자상한 남편에 꽤나 근사한 샵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에게 토오루는 빠져있다. 그녀가 없다면 그는 아마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그녀와 함께가 아니라면 식욕마저 잃을 정도로 그녀에게 빠져있다. 그녀를 통해 음악을, 섹스를, 세상을 배워가는 토오루에 비해, 시후미는 그런 토오루에게 적당히 냉정하다. 자신에게 잘하는 남쳔을 챙길 줄 알며, 샵의 오너로서도 열심이다. 모든 것에서 그녀가 no.1인 토오루에게 그의 사랑은 공평하지 않다.

 

코우지는 의사집안의 막내아들로 적당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호기심이 불러온 사건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저 호기심반 장난반으로 동기의 어머니와 연애를 시작했고, 그 연애의 끝은 혹독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가 스무살 청년이 된 지금, 그는 '자녀가 없는' 멋진 유부녀 키미코와 적당히 귀여운 유리, 두 사람에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하지만 유리가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의미라면, 키미코는 언젠가 그가 먼저 끊어내야할 그런 존재일 뿐이다.

 

점심시간에 홀로 책을 읽던 토오루를 짐짓 재수없다 여기던 코우지였지만, 이내 코우지는 자신과 토오루 사이의 공통점을 알아챘고, 토오루는 언제나 자신이 sos를 쳐도 될만한 믿음직한 친구로 여기고있다. 이렇게 닮았지만 많이 다른 두 사람, [도쿄타워]는 이 젊은이들의 혹독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랑이라 외치지만 남들은 불륜이라 비난하는 그런 이야기라고 할 때, 나는 이미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기대를 반 쯤 접고 있었다. 너무나도 진부한 이야기일 거라는 것 때문이었다. [낙하하는 저녁]이나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발칙하면서도 신선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불륜이라니.. 때문에 나는 꽤나 오랜시간 그녀의 [도쿄타워]를 책장에 방치해 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떠한 기대도 없는 시기가 되어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그래도 조금은 '아! 에쿠니 가오리구나'하는 감상이 먼저 들었다.

 

비록 내가 기대한 발칙하고 신선한 기운은 없어도, 그녀의 섬세한 감성표현은 여전했다. 그녀가 시후미에 대한 토오루의 절절한 애정을 표현해 내는 것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마치 내 눈앞에 사랑의 열병을 앓는 청년이 보이는 듯... 그녀가 그려낸 불륜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더럽지않고 섬세하며 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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