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 초밥장인 안효주의 요리와 인생이야기
안효주.이무용 지음 / 전나무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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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얼음물에 담갔다 꺼낸 듯 차가운 손으로,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선을 햇살도 가를 듯 한 칼날로 멋지게 저며내는 장면. 하얀 머리모자와 하얀 앞치마, 정갈하게 모은 두 손과 생선을 바라보는 열정으로 가득찬 눈.

누군가 나에게 "일식(日食)" 혹은 "스시"라고 말한다면, 이 장면이 머리 속에 섬광처럼 떠오를 듯 하다.

 

사실, 나는 일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하고 싶은 장르의 음식이다. 왜냐고? 글쎄.. 아직 나는 그 날 생선의 맛이란 걸 잘 모르겠다. 물컹물컹한 그 날 것의 이질감이 싫고, 입가에 가져다 대기도 전에 코끝을 스치는 그 비릿함이 싫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참 안됐다고 한다. 왜 그 맛있고 그 비싼 음식을 먹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말이다. 일식은 싫어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은 정말 즐겁게 읽었다.

 

일식이든 한식이든 아니, 요리이든 음악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한가지에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청년의 그 열정이 너무나 좋았다. 비록 세세한 스토리 하나하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한국의 안효주라는 사람이 [미스터 초밥왕]의 한 에피소드에 나왔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미스터 초밥왕]에 "한국의 초밥왕"이라고 소개되었던 사람이라면 그의 열정 또한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에 못지 않을 듯 하여 재차 생각해보지도 않고 책을 들었다.

 

초밥 = 인생, Drama

 


"... 사람의 혀는 간사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하다. 천하일품요리도 세 끼만 달아서 먹으면 물렸다며 싫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 끼만 굶겨놓으면 밥에 소금만 뿌려도 맛있다고 달려든다. 그래서 맛의 흐름, 맛의 대비, 맛의 강화, 맛의 전환이 중요하다. 이 스토리가 좋을 수록, 그 스토리를 받쳐주는 연기가 좋을수록, 미각이 흐뭇해지고, 마음은 따뜻해지며 너그러워 진다.

-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중 121page"

 


인생의 절반정도를 날 생선과 초를 입힌 밥을 만지며 살았을 안효주. 그에게 있어 초밥이란 무엇일까? 그냥 자신을 먹여 살리는 수단일까? 당연하게도 대답은 no!이다. 만약 그가 초밥을 그냥 생계의 수단정도로 생각했다면 그는 아마도 이미 이 일식업계를 떠나있을 것이다. 그럼 그에게 있어 초밥이란 무엇일까?

 

그는 초밥을 통해서 사람들의 세상과 인생을 보고, 초밥을 통해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초를 한 밥과 간장, 고추냉이의 사이에서 사람간의 관계를 보고, 초밥을 통해 손님 한명 한명에게 새로운 미각의 드라마를 선물한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초밥이란 그저 돈벌이의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을 최고의 예술에 비견 할 만큼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처음 본 할머니에게도 기꺼이 소금동냥을 한다. 그에게 있어서 초밥이란, 이미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듯 하다.

 

초밥에 미치다

 


"...경험이 많은 요리사는 초밥 나무통에 밥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밥이 되게 되었는지 질게 되었는지 적절한 지를 안다.  ... 그동안 밥 짓는 거 하나에 미쳐있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되는 일이 없고, 미쳐서는 되지 않는 일도 없다.

-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 중 155page"

 


'미쳐야 미친다', '불광불급 (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미쳐버릴 정도로 혼신을 다해야 그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점에서 안효주는 최상의 초밥에 미치기 위해 미치려 하는 사람이다. 쌀알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이며, 섣불리 유행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이렇게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에게 있어 '최상의 초밥'은 무엇일까? 그에게 있어 최상의 초밥은 바로 '고객과 소통할 수 있는 초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내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작품을 맛 없다고 하는 고객을 무시하지 않으며, 고객의 사소한 지적 하나, 가벼운 평가하나에도 정신을 집중한다. 이렇듯 그가 철저하게 대하는 것은 비단 초밥 뿐이 아니다.

 

그는 올바른 스승을 보며, 항상 노력하는 배움의 길을 걸었다. 쉬는 시간의 훈련도 방해하며 질시하는 선배들의 괴롭힘을 견디며 접객을 하기 위해 없는 말 수를 늘려가며 그가 이루고자 한 것은 완벽한 초밥이었지만, 그가 이룬 것은 "초밥왕"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최고의 초밥에 미치기 위해 노력하면서 말없는 스승의 인정, 고객과의 신뢰, 그리고 자신이 주방을 비워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킬 동료와 제자들을 얻었다.  결국 최고의 초밥에 미치기 위해 한 노력이 그보다 많은 것을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이다.

 

미스터 초밥왕 in Korea

 

안효주, 그는 한국에서 손 꼽히는 일식 요리장인이다. 비단 그가 인기만화에 캐릭터화 되어 출현하고, 국내 굴지의 일류호텔의 일식코너를 담당했던 수장이어서만은 아니다. 그가 낸 몇 권의 일식관련 서적들? 그것들 또한 그가 일식 요리장인이 될 수 있었던 조건들에 속하지 못한다. 각종 명예와 그에 따른 부산물들은 그가 일식 요리장인이 되었기 때문에 따라올 수 있었던 영광들이었다. 그럼 과연 그를 한국 최고의 초밥왕으로 만들어 낸 것은 무엇일까?

 

[안효주,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하다]를 통해 나는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미스터 초밥왕]의 쇼타가 초밥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가졌고 그 열정으로 최고가 될 수 있었다면, 안효주의 경우는 애정이었다. 그는 초밥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애정은 쇼타의 열정 못지 않다. 그리고 그 열정만큼이나 뜨겁다. 초밥에 대한 그의 열애가 바로 그를 한국의 초밥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열정과 애정, 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열정이든 애정이든, 이 둘 중에 한 가지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안효주와 쇼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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