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카페분으로부터 소개받고, 한달이 채 되지 못해서 구입을 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두달여간을 책을 들춰볼 엄두도 내지 못한채 방 한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졸작 제출도 끝이나고, 졸업시험도 패스가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몇번을 주저하다가 책을 꺼내 들었다.
도톰한 두께의 앙증맞은 사이즈. 흑백의 표지.
책은 그 자체의 무게의 수 백만배의 무게감으로 내 가슴을 내리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페에서 읽은 다른 카페분들의 리뷰탓이었던것 같다.
가뜩이나 무겁고 어두운 내 상황에서 이 책을 읽기에는 무의식중에도 엄두가 안 났던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래도 눈먼자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는 실명이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그래서 정부는 실명이 된 사람들을 정신병원에 격리시킨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둘씩 늘어가고...
아직 실명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심에서 살의로 변해가는 감정을 느낀다.
마치 조류독감에 걸린 닭들은 모두 한곳에 모아 폐사시키는 것으로 전염을 막아내듯이.
눈이 먼 사람들이 모두 죽으면 더이상 원인불명의 실명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여태껏 보아왔던 현실을 내눈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눈이 먼 상태로 낯선곳에 격리 수용되었다는 절망감. 그리고 또 외부와는 접촉할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공포. 끝에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그 말로 다 할수 없는 감정이 만들어낸 폭력적이고 비 인간적인 모습은 한 여자 -기적적으로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부인- 의 눈을 통해 그려진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복도한복판에서 배변을 해결하고, 먹을 것을 가지고 강간을 합리화시킨다. 눈이 보이지 않고 세상으로 격리되면서 그들은 인간에서는 점점더 멀어지게된다.
그 안에서 눈이 보이는 단 한명, 의사의 부인은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었으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눈이 먼 자들뿐 아니라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도 격리된 사람들의 수가 늘어감에 따라 공포를 느끼고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눈이 멀지 않기위해, 격리되지 않기위해 그들은 눈 먼자들의 생명을 거리낌 없이 대한다. 한 사람의 죽음보다는 그의 오염된 피로 인한 실명의 확산과 자신의 피해에 더 많은 염려와 걱정을 한다.
눈이 먼다는 이 원인 모를 질병은 그 병에 감염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를 극한으로 몰고간다. 이성도 도덕도 염치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아야 한 다는 것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의사의 아내를 제외한 도시사람들의 전부가 실명하고난 뒤,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흑사병이 휩쓸고간 14세기 유럽의 어느 도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고인채 썩어버린 물, 햇빛을 가린 두터운 먼지와 안개, 거리 도처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과 곳곳에 버려진 시체들. 그리고 그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쥐와 개들.
 
그 상황에서 눈이 보인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저주에 가까웠다.
의사의 아내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무리까지 먹여살려야 한다는 중압감에 지쳐갔다. 그리고 어느날, 이유도 모르게 실명이 전역에 퍼져 나갔듯이, 사람들은 다시 하나둘 시력을 찾아간다.
 
나는 궁금하다.
과연 시력을 찾은 사람들은 기쁘기만 할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았을때 자신들이 했던 그 폭력적이고 비 인간적이었던 행위에 괴로워하진 않을지.. 말이다.
이 책 안에서 그려진 세계는 실제가 아니에도 불구하고 섬뜻하고 고통스러웠다.
의사 아내의 눈을 통해 내가 그녀와 함께 보고 느낀 극한으로 몰린 인간의 모습은 최악의 최악이었고, 또 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은 눈이 멀면서 점점 사람이라는 자신의 존재에서도 멀어져 갔다. 그들은 단지 시각이라는 신체의 감각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지탱하던 것들을 통채로 잃어버린 것이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상황.... 난 그 상황이.. 단지 텍스트일 뿐이지만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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