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Mr. Know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상업이 발달하면서 이 세상은 혼란스러워 졌다.

거대한 기계를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물건을 팔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사람들은 시야를 바다 건너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나가 물건을 팔고 돈을 벌어올 미지국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마도 식민지 개척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또한 그런 개척자들 중 하나였다.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에 필적하는 길이의 이름을 가진 사랑하는 부인과 그는 밀림으로 살기위해 들어온다. 하지만 척박한 땅위에 그는 헛된 땀과 노력을 쏟아부었고, 사랑하는 부인마저 이주한지 2년 만에 말라리아에 걸려 죽게된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망가져 간다. 아무리 땅을 일구어도, 오늘 나무 뿌릴 뽑아내면 그 다음날 다른 곳에서 날아온 이름모를 씨앗이 싹을 틔우는 그런 땅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탓이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건 그 땅에  이미 오래전부터 터를 내리고 살아온 수아르 족이었다.

 

백인들은 그들을 미개하고 신기한 구경거리정도로 밖에 보지 않았지만 사실 수아르족은 백인의 그것보다도 뛰어난 생명력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총으로 쏘아 생명을  끊을줄 밖에 모르는, 반짝이는 돌덩이에 불과한 금 몇쪼가리에 환상을 품은 백인 이주인들과는 달리 자연과 어울려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갈 줄 알았다. 노인은 지금보다 젊었던 그 시절을 수아르족과 같이 보냈다. 친구가 죽고 친구의 평온한 죽음을 지켜주지 못한 노인은 수아르 족을 떠나왔지만, 그 동안의 세월은 노인에게 그 어떤 것 보다도 값진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이 지구 어딘가에 사는 종족(혹은 민족?)은 어린아이의 죽음보다 노인의 죽음에 더 애도를 표한다고 한다. 우린 살아갈 날이 많은 아이들과 많이 살아온 노인들의 죽음중에서 살아갈 남이 많은 아이들의 죽음에 은연중에 가치를 더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종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아이보다는 오래 살아온 기간만큼의 노하우와 지혜를 가진 노인의 죽음에 더 가치를 높이 두는 것이다. 우리말에 나이는 공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도 있는 것처럼.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그 많큼 더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말이된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은 살아온 날만큼의 날 동안 자연에 친화되는 방법을 배웠다. 수아르족이 아니지만 수아르족인 그 노인은 그래서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고 돈밖에 모르는 읍장에 어쩌다 보니 맞서서 읍장의 우둔함을 깨우치게된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일 보다도 책을 읽는게 좋았다. 허리를 곧게펴고 서서 다리가 긴 탁자 앞에 서서 책을 읽는 것이 노인의 일과였다.

 

노인이 읽는 책은 언제나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뜨겁게 만들고, 눈물을 왈칵 쏟아지게 만들 연애소설이었다. 처음 자신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을 깨달은건 수아르족에서 떠나왔을 때였다. 그리고 그는 어려운 기하학 책이나 왠지 거짓말인 것같은 역사책 보다는 감정을 움직이는 연애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과 어울려 살았던 지난 시절에 비해 사람과 부대끼며 소란스럽게 살아야 하는 개척촌에서 생활에서 노인이 살아갈 수 있게하는 힘이 었을 것이다.

 

가끔은 아끼는 의치를 꺼내어 끼고 고기를 씹기도 하고, 치과의사가 가져다준 새 소설책을 읽으며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노인의 삶은 머저리같은 읍장에 의해 깨어진다.  밀림안으로 들어가 마구 총을 쏘아대던 한 남자가 그 손에 새끼를 입은 암살쾡이의 습격을 받아 죽게되고, 새끼잃은 살쾡이는 분노에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토벌대를 이끌던 읍장은 자기의 어리석은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날까 두려워 노인에게 돈을 댓가로 살쾡이를 잡아오라고 한다. 그리고 노인은 홀로 남겨져서  총 한 자루, 실탄 몇 발과 함께 밀림을 헤맨다. 과연 살쾡이는 어디 있는 것일까.... 살쾡이를 찾아 밀림을 헤매면 헤맬수록 노인은 깨닫는다. 문명에 물든 개척자로서 살쾡이를 보던 노인의 눈은 수아르인의 눈으로 살쾡이를 보게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살쾡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노인 스스로가 가장 원하는 것을.

 

서로의 눈치를 보며 경계하던 살쾡이와 노인은 마지막 일전을 벌인다. 아슬아슬하게 노인의 손에서 방아쇠가 당겨지고, 살쾡이는 살쾡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게된다.  일을 마친 노인은 어서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가 연애소설을 읽었으면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조용히 연애소설을 읽는 것 그것이 바로 노인이 원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문명에 물든 인간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고 무조건 나서서 먼저 폭력을 휘두루고,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함부로 정의하고 대하는 읍장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 미개하다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게 됐지만 수아르 족은 오히려 그 환경안에서는 개척자들보다 뛰어난 삶의 기술을 가질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 멍청한 개척자들 그리고 문명인들 탓에 살쾡이와 원주민은 자신의 땅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없게 됐고, 마침내는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상대에게 겁도 없이 주먹을 휘두르면 돌아오는 것은 자신이 휘두를 것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고통일 뿐이다. 노인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감정을 뒤흔드는 연애소설만 읽기를 고집하는 것도 사실은 가장 자연스런 모습으로 돌아가고자 한 노인의 의지를 대변해 주는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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