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클럽
천계영 지음 / 시공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중고교 정규과정을 밟고 있을때, 한국만화계에는 황미라, 신일숙,  이미라의 뒤를 이을만한 순정만화가가 등장한다. 바로 천계영이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만화에 관심이 없어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것 같다.
 
나와 친구들은 천계영이 일본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쯤 벤츠쯤은 몰고 다니고, 빌딩 몇 채 정도는 가지고 있을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열악한 한국만화계에서 그만큼 천계영은 눈에 띄는 존재였다. "컴백홈", "탈렌트"의 단편집 두권에 이어 연재한 "언플러그드 보이"가 꽤나 히트를 쳤고, 그후에 나온 "오디션"또한 한국만화치고는 꽤 많은 판매부수를 올렸다. "오디션"이 10권의 시리즈로 완간이 되고나서, 천계영은 잠시 미국으로 건너가 휴식기를 갖는다. 그리고 그 휴식기에 나온 책이 바로 "THE 클럽"이었다.
 
만화가가 무슨 소설책?이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 또한 천계영이 소설책을 낸다는 사실에 약간(아주 약간) 놀랐었으니까.
하지만 천계영이 낸 소설책이기에 기대감이 더 한 것도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런 기대감은 천계영의 작품을 봐왔던 사람이라면-한 권 이라도 본 사람이라면-누구나 가질 만한 기대감이다.
 
슬플때 힙합을 추는 소년 현겸이와 그런 현겸이의 등에 날개가 돋아 날아가버릴까 걱정하는 지율이,  반고호를 좋아해 반씨성을 찾아 결혼한 엄마 덕분에 이름이 반고호가 된 고호, 그리고 세상에 반항하며 입에 '쳇'과 'shit'을 달고사는 락까지..(사실 이 락이라는 놈 때문에 나 학창시절에 'shit'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제법 많았다.) 단 2권으로 끝난 "언플러그드 보이"만하더라도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어느하나 개성이 부여되지 않은 캐릭터가 없었다.
 
그랬던 천계영의 작품활동을 봐왔기에 과연 천계영 그녀만의 그런 독특한 특징이 소설이라는 장르안에선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한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궁금함이 곧 기대감이 되었고, 난 꽤나 조금은 힘들게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The 클럽"은 직설적이고 약간은 독특한(초능력자가 되기 위해 꿈을 기록하는) 소녀 김나미의 성장기록이다. 김나미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자신과 동류인 반디라는 소년과 친구가 된다. -엉뚱함에 있어서는 반디도 만만치 않다. 고등학교 입학기념으로 입학전날 귀를 뚫고 귀고리를 하고 학교에 등교하고,  나미를 위해 생리대를 사러가길 마다하지 않으며 친구들을 동원해 나미의 생일날 '나미를 찬양하세'따위의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견고한 두 친구 사이에 이토라는 학교에서 절대적 존재감을 자랑하는 소년이 끼어들면서 둘 사이는 틈이 생기게된다.
 
이러한 둘을 다시 친구라는 틀로 묶어주는게 바로 'the 클럽"이라는 학교내에 존재하는 비밀클럽이다. 이 클럽에는 특별한 사람만이 회원이 될 수 있고, 나미 또한 자신이 독특하기 때문에 -사실은 이토가 그 클럽인 것 같아서 이토와 친해지고자- 그 클럽에 가입하려고 한다. 남자화장실에서 어렵게 클럽과 연락할 방법을 알아내고 나미는 그 틀럽에 가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징어는 자신의 비밀을 얘기해야하는 클럽의 오디션-보안을 위해 전화로 진행되는-까지 훔쳐본다.
 
비밀 오디션에서는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 해야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클럽의 가입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가입절차에 관한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사고로 뇌의 거의를 잃고 살아났지만 1-7까지밖에 세지 못해서 죽을때 '7살에 죽는구나' 슬퍼했던 아버지를 가진아이, 부모가 주는 중압감에 성적으로 집착하며 미쳐버린 아이, 게이 아빠와 레즈비언 엄마를 둔 아이까지. 나미는 오디션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을 훔쳐본다.
 
사실...
천계영이 쓴 이 소설은 그렇게 빼어나게 잘 쓴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서술기법이나 표현방법등의 테크닉적인 부분에서는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만 보면 잘 쓴 소설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이 소설에서 기대했던 것은 캐릭터였고, 캐릭터적인 면만을 봤을때는 기대감의 거의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2%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만... )
이 소설은 영화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언젠가 본 영화감독의 인터뷰에서 감독이 이 소설에 주목한 것은 바로 비밀 클럽의 오디션이라는 특이성 때문이었다고 했다.
천계영의 캐릭터와 설정과 소재에 대한 기발한 착상을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추천한다.
하지만 소설의 테크닉적 면을 보겠다면 과감히 손에 놔 버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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