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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블루 -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
김영숙 지음 / 애플북스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이 쓰는 글에는 그 사람의 감정을 비롯한 거의 모든것이 담겨있다.
나는 이런 맥락으로 글을 이해한다. 이상의 "날개'와 "봉별기"를 읽으면서 세상의 모진 세파와 혼돈의 끝에서 그 여린 날개를 한껏 훔츠리고 갸날프게 떨렸을 그를 떠올렸고,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방북했을 당시 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맞다.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은 그다지 좋은 독서의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라든지, 수필 등을 읽을 때엔, 이런 방법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듯 하다.
Paris Blue.. 블루라는 색상은 우울함을 의미한다던가? 파리로 떠난 그녀, 김영숙은 우울함을 통해 파리를 그려냈다.
'하나님, 저는 개신교 신자인데요. 여기선 가톨릭 하'느'님이시죠? 어느 님이시건간에 기쁘신가요? 저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삼으시려고 그렇게 온갖 고통에 시달리도록 내버려 두시고, 이젠 제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외치고 있네요. 그래서 좋으세요? 전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실지 다 알아요. 네가 죄에 시달린 것은 내가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가 택한거다. 이렇게 말씀하시려고 하죠? 네,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좀 너무하신것 같아요... 저 굉장히 힘들어요. 잘 알죠? 공연히 모른척하지 마세요.'
-노트르담 성당에서...
그녀는 생활에 많이 지쳐있다란 사실이 한권의 에세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늦은나이에 입학한 대학원, 어려운 '미술사학' 공부, 항암 치료를 마악 끝낸 남편, 그리고 때마다 밥을 차려 먹여야할 참새같은 자식들... 그녀는 학생이고,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이며, 남편의 아내이고 아이들의 엄마이다. 하나의 삶은 여러개의 타이틀을 달고 여러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 그녀는 생활에 지쳐있다. 그리고 그것은 종이에 번진 먹물처럼 번져나가 몇 십년전 그녀의 과거 속의 상처마저 끌어당긴다.
루브루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노트르담 성당, 피카소 미술관, 로댕 미술관, 퐁피두 센터....
그 많은 곳을, 그렇게 이야기거리가 넘쳐나는 곳을 방문한 그녀는 자신의 우울함과 고단함에 휩싸여 작품을 본다. 카미유 클로델과 로댕의 작품을 보면서도 그녀는 그들의 치열했던 사랑 속에서 자신의 43이라는 나이를 기억해 낸다. 그리고 그 기억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그녀의 고단함과 지침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의 도시에서도 그녀의 우울함의 끈을 놓지 못한다. 때문일까? [파리블루]는 사실 '기억으로 그린 미술관 스케치'라는 부제에서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다.나는 부제를 보고 파리의 곳곳에 산재한 미술관의 작품이야기를 배부르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파리블루]는 파리의 각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며 떠오른 그녀의 추억과 기억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머물며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했고, 사진을 찍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녀는 [파리블루]를 썼을 것이다. 인생의 우울함과 행복, 그것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다. 행복의 끝과 우울함의 시작, 행복의 시작과 우울함의 끝은 서로 이어져 있다. 파리에서 철지난 감기와도 같은 지독한 우울함을 앓고 돌아온 그녀, 그녀는 이제 조금 더 행복해 지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