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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파워 - 성공의 룰을 다시 써라
클레어 십먼 & 케이티 케이 지음, 이정민 옮김 / 따뜻한손 / 2011년 7월
평점 :
얼마 전 회사에서 CBS 라디오 ㄱ의 기록을 제안했다. 그 방송이 7시에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6시 30분에 출근해야 했다. 수많은 직원 중에서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기회를 주겠다고 한 것이 고맙기는 했지만 솔직히 나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나의 희생(?)을 너무나 당연시여기는 상사와 직장동료들이 너무나 얄미웠다.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독서 2시간과 운동 2시간을 습관처럼 매일 하고 있던 나는 도저히 이 제안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거절하자니 상사의 압박, 게다가 나의 처신에 따른 연봉과 위치가 걱정이 되었다.
핑크파워는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지침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사람, 자신의 삶을 위해서 연봉과 평판은 어느 정도 희생할 각오를 한 직장인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독자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고 있지만, 나와 같은 남성 중에도 삶과 일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책의 논의를 살펴보기 위해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면,
1장에서는 유연근로제를 주장하기 위해 핑크파워, 여성의 위치를 제시하고 있다. 근거로, 여성을 많이 고용한 회사일수록 더 많은 이윤을 낸다. 불황기에도 여성은 안정추구성 덕분에 이윤을 낼 수 있다. 또한 여성 특유의 조화력으로 관리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여성은 소비력이 남성에 비해 크므로 마케팅을 좌우하는 영향과 능력이 크다. 회사는 능력 있고 경험 많은 여성을 잃어버리면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타협을 하게 된다. 불황기일수록 여성은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유연근로제)을 찾게 되는데(26~50쪽 ) 여성은 이런 형태의 일을 원한다는 것이다(2장)
1장~2장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알아보았다면, 3장에서는 여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저자는 그것이 유연근무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여성의 감성적인 삶에 비추어볼 때 좀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그 방법으로 체크리스트를 제시하고 있다. 4장~7장부터는 여성이 좀 더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죄의식 버리기, 남에게 맡기기, 한계 설정하기, 타협하기, 직장에서 효율적으로 시간 보내기, 성과 자랑하기, 전략적 화술, 직장 내 분위기 바꾸기 등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책의 유연근무제를 지지한다. 일과 삶의 균형과 조화를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을 사람들을 대변해서 몇 가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저자는 유연근무제와 단축근무를 의식적으로 혼용하고 있다. 주5일 40시간 9시 출근, 6시 퇴근의 근무를 주4일 40시간으로 유연하게 근무하려면 9시 출근, 8시 퇴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임금은 동일하게 그러면서도 9시 출근, 3시 퇴근의 주당 4일의 25~30시간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이 점을 비판할 것이다.
둘째, 직장 내 팀워크 문제다. 모든 직장인의 출근시간과 점심시간, 퇴근시간을 정해놓은 이유는 단순히 직장인들을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 함께 모여서 업무를 하고 의논을 하고 같이 쉬는 건 나름대로 업무 성과가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더 나은 업무성과는 팀원들 간의 일치된 단결력이라는 조직문화에서 나온다. 이 책의 저자들은 직장 내 시간의 80%는 ‘일하는 척’ 하는 쓸 데 없는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본인들의 회사생활을 너무 일반화시킨 듯싶다.
셋째, 위화감 문제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었을 때, 주5일을 쉬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주6일 일하는 근로자들이 상당히 있다. 게다가 그들은 대개 열악한 업무환경에 처한 경우다. 그들은 주5일 아니 주4일 30시간 일하는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연봉도 주5일 40시간 일하는 사람보다 높다면? 실제로 공무원 유연근무제를 바라보는 일반 직장인들의 시각이 곱지 않았던 점은 이 때문일 것이다.
넷째, 똑똑한 얌체들에 관한 비판이 초점을 이룰 것이다. 왜 그들은 멀리 보지 못하는가? 그들이 지금의 고비를 넘기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연봉과 자유시간이 더 많은 위치에서 유리한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왜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면서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가 하는 비판이 제지될 수도 있다. 자신의 유연한 시간을 위해서 NO라고 말하고 다른 이에게 맡기라고 했는데, 모든 이들이 ‘똑똑한 얌체’가 되면 누구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그들도 NO라고 말하고 3시에 가버릴 텐데 .
다섯째, 기본적으로 그들은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비절감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직장인의 남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또한 그들 스스로 그런 자리를 포기함으로써 CEO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까지 스스로 박차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는 회사와 나는 영원한 적일 수밖에 없으며 회사의 제안에 대해 ‘나는 당신의 노예가 아니에요’라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만다.
여섯째, 왜 자꾸 남성과 여성을 편 가르는가? 이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뛰어난 업무 관리 능력과 감정 조화 능력에 대한 엄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DNA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화심리학이고 진화심리학은 아직 엄밀한 논증이 되어 있지 않다.
나는 유연근로제를 지지한다. 또한 여성의 힘을 믿는다. 나는 남성이지만 유연근로제를 내 삶과 일이 조화롭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은 비록 여러 가지 비판 받을 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장처럼 유연한 근로제가 우리 대한민국의 회사에도 정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