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우에무라 나오미 지음, 김윤희 옮김 / 한빛비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무엇인가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고  또 어렵다는 뜻이리라. 나  역시 항상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싶은 열망은 있었으나, 막상 새로운 것에 발을 들여놓기에는 두려움이 컸고  또 지속할 끈기가 부족했다. 그렇게  또 똑같은 일상에서 후회하며 안주하는 것이다. 보라,   여러분 주변에서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이 책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로켓 추진체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의 저자 우메무라 나오미는 위의 소개에도 나온 것처럼  최초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5대봉을 등정했고,  또 북극 12000km을 개썰매로 횡단한 기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거창한 이런 소개와 달리,  책의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의 본성이 그대로 가감없이 드러난다. 그것이 이 책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또 우리에게 귀중한 체험과 감동을 제공해주는 것이리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중반까지 무척 불편했다. 그것은 이 사람의 삶이 나와 다른 것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이었겠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의 그 지나치리만큼의 무모함, 편집증적으로 나아가려는 욕망, 학대에 가까운 부림, 때때로 가금씩 보이는 편협한 시각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가감없이  탐험일지에 기록함으로써 우리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것이 묘하게 이 책에 진실한 체험과 감흥을 불러일으키니 아마도 탐험일지계의 고전의 반열에 이른 까닭이리라.  

 

책의 후반부쯤 갔을 때, 점차 저자와 나는 동일시되어 갔고 저자가 지녔던 공포와 굶주림, 추위와 고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공감대는 무척 사랑했던 안나의 자식, 콘노트가 죽었을 때 절정이 됐다. 그 경험으로 저자는 이 기록이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개들까지도 동료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저자가 그 후로 12000km 완주라는 쓸데없는 자존심에 집착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저자의 심성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일지에 개를 죽여서 개들에게 먹이고 마지막에는 그 개까지 먹으며 종단을 하겠다고 몇 번씩 언급하지만, 실제로는 개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었을 때조차도 그 개를 다른 개들에게 먹이지 않았다. 일지는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일종의 주문이었으리라

 

당연히 이 책의 저자와 나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불편했던 만큼 느낀 점도 정말 많았다.  우선 나는 불굴의 전진 의지를 배워야 한다. 어쩌면 북극은 이것저것 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잔머리보다 정직한 한 걸음에 자신의 품을 열어보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더 힘들고 복잡한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둘째, 시작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어떻게 갈 수 있을까.  더 이상 못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가 비로소 나머지 반을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만큼이면 됐겠지 싶을  때조차도 저자는 거기서 4번이나 더 앞으로 전진했고 그제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셋째, 고민이 된다면 일단 시작해라, 경험으로 그대에게 보답하리라. 처음으로 예전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를 생각나게 했다. 그 경험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시작할 때조차도 도움이 됐다. 넷째, 나오미는 이 개썰매종단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기록에 대한 자존심과 허영, 집착에 따른 초조함과 증오에서 동료애와 여유로 자신을 확대시킬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맹목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멈추어 그것이 허상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지혜를 배우라

 

여담이지만 이 책을 통해 에세이를 다시 보게 됐다. 본래 말랑말랑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나오미처럼 나도 벽을 깰 수 있었던 것 같다. 흐뭇한 책이다.  

 

그리고 안나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다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나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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