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다 - 뇌과학과 명상, 지성과 영성의 만남
마티유 리카르 & 볼프 싱어 지음, 임영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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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립 한주 한책 서평단 고전세입니다.

나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요가를 하고 있다. 요가를 시작한 지는 10년 이상 되었지만, 꾸준히 한 것은 4,5년 정도이다. 처음에는 허리가 아파서 치료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요가를 할수록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정신적으로 강해짐을 느낀다.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웬만한 일에는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요가의 목적은 수련을 통해 궁극적으로 온몸의 차크라를 열어 신일 합일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요가에는 명상이 빠질 수 없다. 요가 수련전 혹은 수련후 잠시의 명상이 나의 마음의 평정을 찾아주고, 정신의 평화를 가져온다. 요가와 명상을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책은 신경생물학자이자 뇌 관련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볼프 싱어와 40년 동안 명상수행자와 승려로 살아온 마티유 리카르가  뇌와 명상에 대해 8년 동안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신경과학자와 불교 승려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저자들은 "서양의 과학과 불교 사이의 대화는 흔히 과학과 종교의 까다로운 논쟁으로 통한다. 물론 서구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는 바에 따르면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창조주의 개념에 바탕을 두지 않고 신앙의 행위 또한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는 일종의 '정신과학'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혼돈에서 지혜로, 고통에서 자유로 이끌 수 있는 '변화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경험적인 방식으로 정신을 연하는 능력을 다른 학문들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리카르와 싱어는 오랜 우정과 공통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명상과 뇌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1장에서는 "우리는 다른 동물보다 뛰어난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신체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훈련을 하듯, 정신력도 훈련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을까? 정신수련으로 좀 더 높은 집중력과 이타심, 차분함을 가질 수 있을까? 혼란스러운 감정을 최적의 방식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 다양한 방식으로 명상했을 때 뇌에는 어떤 기능적, 구조적 변화가 일어날까? 초보 명상가가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2장에서는  "무의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갈등을 유발하는 상황을 줄일 수 있을까? 이타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을 구분 짓는 기준을 무엇일까? 사랑은 여러 감정들 중에 최고일까?"를 다루고, 3장에서는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실험적이고 지적인 연구들로 이러한 현상의 본질적 특성을 밝혀낼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는 걸까? 우리의 지각에서 독립된 객관적 현실이 존재할까? 우리는 현실왜곡을 바로잡고 고통의 원인을 없애기 위해, 자기성찰을 통한 내면의 현미경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4장에서는 "자아는 우리의 존재 깊숙이 자리한 실체일까, 아니면 뇌 속의 조종부일까? 혹은 개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경험의 연속체일까? 강한 자아는 정신건강에 꼭 좋은 것일까? 자아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버리는 것은, 우리를 상처받기 쉬운 존재로 만들 위험한 일은 아닐까? 반대로 투명한 자아는 영혼의 힘과 내면의 확신에 도움을 줄까?"에 대한 이야기를, 5장에서는 "자유의지가 정말 존재할까? 만일 우리가 그 일부만을 인식할 수 있는 신경과정을 거쳐 모든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과연 그 행동에 대한 진정한 책임자일까? 정신수양은 무의식적 과정의 내용과 그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또 무엇이 개인의 책임감, 선과 악, 징벌과 회복, 용서 등의 개념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 영향을 줄까? 마침내 자유의지를 입증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의식은 뇌의 활동에 불과한가, 아니면 다른 모든 경험과 인식보다 앞서며, 우리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사실'로 생각해야 할까? 명상가들과 현상학자들의 '1인칭' 접근법은 의식이 신경의 상호작용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개념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우리는 뇌를 몸에 새겨진 것이자 사회. 문화에 새겨진 것으로 간주하는 중간적 시각을 취할 수 있을까? 초심리학 현상은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명상과 뇌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명상'에 대한 관심이 있고, 이 명상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어떻게 증명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티유는 책에서 명상이 "2,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직접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정신 기능에 대한 탐구"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삶의 외부적인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세상에 대한 경험을 만들어내고 이를 행복이나 고통으로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정신"이며, "우리가 사물에 대한 인식의 방식을 바꾼다면 삶의 질도 바꿀 수 있다"라고 말한다. 정신수련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이런 변화가 바로 명상이다.

요즈음 길을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남녀노소 온통 고개 숙인 사람들뿐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신이 우리 모두를 그분 앞에 고개 숙이게 만든 것이다. 그 속에 나는 없고, 온통 다른 사람의 말들로 가득하다. 정작 그리운 사람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핸드폰 속의 다른 사람과 대화하느라 앞에 있는 사람과 진중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우리의 정신은 '지금 여기'가 아닌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 속에 머물러 있다. 가끔은 모든 전자기기를 'OFF'하고 산책을 해보면 어떨까? 아니 아침에 일어나 잠시 두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보면 어떨까? 그럴 때 하루를 살아갈 자신감은 물론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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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2018 세종도서 교앙부분 타산지석S 시리즈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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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클럽 한주한책 서평단 고전세입니다.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요?" 누군가 저에게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대략적으로 "일제 강점기와 동족 상잔의 비극인 6.25를 거쳐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 "그만큼 세대 간의 갈등과 빈부 격차가 큰 나라",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인 나라", "명문대를 나오지 않고는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는 나라", "체면과 겉치레에 민감한 나라", "학벌과 군대 문화가 어렸을 때부터 뼛속 깊이 박혀 있는 나라"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요? 왜 일본의 정치인들은 독일처럼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고, 한국과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의 전범(戰犯)을 모신 야스쿠니 신사에 매년 참배를 하는 걸까요? 이 책은 이런 궁금증 때문에 집어 들었습니다.

저자인 김응교 시인은 일본에 13년 동안 유학생으로 시작해 선생으로 머물면서 글을 썼고, 이 책은 그중에 '일본적 마음'을 담은 글을 깁고 다듬은 것이라고 합니다. 책의 제목이자 다소 애매한 '일본적 마음'에 대해 저자는 “출판사에서 책 이름을 정해주셨다. 적(的)자를 악착같이 안 쓰는 편인데, ‘적’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모호한 확장성에 동의하여 ‘일본적 마음’을 제목을 삼았다. ‘적’을 쓰니 더욱 일본적이다.”라고 책의 말미에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적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저자의 말을 인용해 몇 가지 키워드로 살펴보겠습니다. 지진이 일상다반사인 일본인들에게 죽음은 늘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쿠라(벚꽃)의 만개에 넋을 잃은 저자에게 일본인 교수는 일본인이 사쿠라를 보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느냐고 물었고, 저자는 '꿈'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인 교수는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이라며, 답은 '죽음'이라고 가르쳐주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죽음의 문화를 확고히 다져놓은 것은 사무라이 문화라고 말합니다. "사무라이의 죽음은 영웅의 죽음이다. 사무라이는 '배를 주릴 망정 명예에 죽고 사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무사도, 그중에서도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무사도의 극치를 일러 하가쿠레 정신, 곧 '나뭇잎 그늘에 숨는 정신'이라며 극적으로 미화했다. 또한 사무라이의 문화, 곧 칼의 문화는 오늘날까지도 변용되어 곳곳에 스며 있다.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말은 ‘주군의 영지를 목숨을 걸고 지킨다는 말’이었는데, 그게 더 확실하게 ‘자기의 생명을 걸고 열심히 일한다’로 바뀐 말이다. 말로써 쇼군과 ‘의리’를 걸고 영지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일본어로 헤어질 때의 인사말이 ‘사요나라’(左様なら)인데, 이것은 글자 그대로 ‘사요’ 즉 ‘그렇다면’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대로 이 사실을 솔직히 받아들여 헤어집시다’라는 뜻이다. 서양에서 죽음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국인의 경우는 최소한 원래의 장소는 돌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일본인은 사망을 ‘나쿠나루모노[失亡 : 없어지는 것]’라고 한다. 그야말로 끝나는 것이다. 시신에 대한 기대는 어떤 것도 없기에 불로 태워서 뿌린다. 그것으로 끝이다.”라고 말합니다.

수치의 문화에 대해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무사들을 용감하게 만들었고, 명예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행동을 만들었다. 그것이 일본인들에게 일반화되면서 태평양전쟁 때 군국주의와 만났을 때는 살아 있는 부끄러움보다 죽음을 택하는 그들 말로 ‘옥쇄(玉碎)’라는 ‘명예로운 길’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죽음은 제2차 세계대전때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여 자살한 국회의원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적인 태도에도 수치의 문화가 배경이 된다. 태평양전쟁 때 군인 위안부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죄’라고 생각할 때, 일본의 정치인들 혹은 일본이라는 ‘국가주의(國家主義)’를 강하게 강조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런 일들을 ‘수치’로 파악하고, 숨기거나 왜곡하고 싶어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일본의 이런 죽음의 문화 그리고 그것의 중요한 요인이 된 사무라이 문화는 야스쿠니 신사에 와서 정점에 달합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태평양 섬에서 옥쇄(玉碎)한 일본군들은 모두 천황의 무한한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일본인들은 말했다. 또한 죽으면 영웅신이 된다는 걸 병사들은 알고 있었다. 포로가 된다는 건 신이 되는 걸 포기하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옥쇄하는 것이다. 바로 이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하면 신인 천황이 참배해준다는, 전사의 영광을 교육하는 군국주의 시설이었다."고 말합니다.

즉 일본인에게 야스쿠니 신사는 전범(戰犯)이 아닌 사무라이의 무사도(武士道)를 철저히 지킨 전쟁 영웅들이 신으로 모셔진 곳이고, 이를 부인하는 것은 일본이란 나라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사과하는 것은 차라리 자살을 할지언정 사무라이 정신에 위배되는 '수치'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일본이란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요? '일본적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김응교 시인의 작은 이 책 한 권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실마리는 얻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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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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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http://m.blog.naver.com/licgos/220606589826

<시민의 교양>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2권을 지은 채사장의 저서로 제1권의 심화 학습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지대넓얕 1권을 재독하고 있는데 처음에 그냥 지나쳤던 내용도 깊이 있게 보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먼저 읽든 같이 읽으면 내용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百戰不殆)라고 했습니다.

즉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의 싸움에서도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먼저는 나를 알아야합니다. 내가 처한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향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현실에 처해 있으며 나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세계를 선택해야 할까요?

저자는 세계를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으로 단순화하고 이를 선택할 권한이 시민인 나에게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세계는 경제 체계를 말하고 이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입니다.

'시장의 자유'는 낮은 세금과 이에 따른 낮은 복지를 말합니다. 작은 정부와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는 소극적 자유를 지향합니다. 자본가에게 유리하며,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이며 분배에 있어서 차별적 분배를 지향하는 보수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개입'은 이와는 반대로 높은 세금과 높은 복지를 말합니다. 큰 정부와 자신의 뜻을 이행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를 지향합니다. 노동자에게 유리하며, 소득 격차 완화에 중점을 두고 분배에 있어서 균등적 분배를 지향하는 진보적인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향후 10년간 세계적인 저성장의 그늘에서 인구감소와 맞물려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을 받을 것입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인플레이션 정책으로 금리 인하와 통화량 증가를 꾀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환율 상승으로 몇몇 수출 대기업은 이익을 보겠지만, 물가 상승으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감소하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시장의 자유'를 선택할 것입니까? 아니면 '정부의 개입'을 선택할 것입니까?

선택은 자유입니다.

끝으로 진정한 시민이 되어 돌아온 비서실장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나를 바꾸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것.

우선 나를 바꿔야 합니다. 나의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사람들과 경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그렇게 건강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세상을 바꿔야 합니다. 하나의 경제체계를 선택하고, 이를 반영하는 하나의 정당을 지지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을.

신문을 접고, 티브이를 끄고, 타인의 말에 휩쓸리지 말고, 나의 현실을 적시한 후에 정말 나에게 이익이 되는 세계가 무엇인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세계를 복잡하게 이해하려다 지치지 말고. 세계를 관통하는 단순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일의 세계를 시장의 자유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정부의 개입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시민 각자가 현명하게 나의 이익에 따라 선택을 할 때, 그 선택은 사회 전체를 살 만한 사회로 만들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민은 세상의 주인이고, 역사의 끝이며, 그 자체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제목이 '시민의 교양'입니다. 이 정도의 지식이 없으면 시민의 자격이 없음을 역설하는 것은 알겠으나 입에 잘 감기지는 않습니다.

'시민의 자격'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통해 인류의 역사는 경제 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 특히 생산 수단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끊임없는 갈등과 대립의 소산임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인문학의 여정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지대넓얕' 1,2권과 더불어 강력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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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당신도 부자가 된다 - 머피 박사의 독특한 성공 원리에 대한 명쾌한 해답
조셉 머피 지음, 미래경제연구회.이선종 옮김 / 선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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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licgos)

 

「돈은 좋은 것이다. 아주 좋은 것이다. 그것은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

본문 115p의 내용인데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맞아 돈은 좋은 것이고 나와 내 이웃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소중한 물건이야"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돈은 모든 불행의 씨앗이며 나와 남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로 없어져야 할 악의 대상 중 하나야"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듭니까?

증요한 것은 나의 표면적인 생각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 잠재의식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 느낌의 결과가 지금 나의 현실입니다.

솔직히 저는 돈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돈은 부족하지만 않으면 되고, 돈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더 많다라고 생각하며 돈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은 한 마음에 두 가지를 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먼저 생각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상상력이 먼저 입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곧 현실이 됩니다.

나는 내가 생각한데로 만들어집니다.

지금 나의 마음속에 잠재의식에 어떤 생각을 품으렵니까?

아직도 내 환경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심으시겠습니까?

지금의 내 환경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만든것인데도 다른 사람을 탓하시겠습니까?

아버지나 어머니. 직장 상사나 동료, 부하가 아닌 내가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은 물론 내 이웃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먼저는 생각속에서 최상의 상태를 상상하여 그것이 실현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나와 이웃의 현실이 변화됩니다.

물리적인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 바꿔야 할 것은 이런 생각의 습관입니다.

아직도 자신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다짐하시겠습니까?

그럼 돈과 나는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신은 언제나 나의 부와 기쁨과 행복을 원하며 우리는 그것이 늘 가득함을 느껴야 합니다.

어느 순간 마음에서 저절로 감사함이 나온다면
그것은 부와 기쁨과 행복이 실현되었다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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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고다드 라디오 강의 - 잠재의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삶은 바뀌지 않는다
네빌 고다드 지음, 이상민.위미경 옮김 / 서른세개의계단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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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licgos)

 

이제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날입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펴지며 예수님을 믿는 자나 믿지 않은 자나 들뜬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이유는 25일 금요일이 휴일이기 때문이겠죠.

직장인들은 크리스마스 앞뒤로 연차를 쓰면 해외여행도 다녀올 수 있고, 주위를 봐도 실제 그런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인은 예배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과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심을 감사할 것입니다.

참회와 감사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참 신앙인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때 뿐입니다.

혹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며 자신의 상황을 인정해 버립니다.

죄(sin)란 무엇일까요?

다른 남자나 여자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하면 죄일까요?

돈을 사랑하고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 죄일까요?

십계명을 어기면 죄일까요?

아닙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bull's eye 즉 과녁의 정중앙을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자꾸 옆으로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건강, 부, 명예, 행복 등 내가 소망하는 것이나 원하는 상태가 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한 상태이고,

따라서 죄사함이란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가지면 그것에 대한 욕구가 더 이상 생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죄사함을 받으려면 이미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 상태를 상상하고 느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픈 내가 건강해지고 싶다면, 건강할 때의 느낌을 상상하며 마치 이미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 상상력이 나의 잠재의식에 씨앗을 뿌려 곧 열매를 맺게 합니다.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평상 시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잘 들여다보십시오.

예를 들어 출근하면서 직장 동료등에게 잘잤어?라고 물으면 대부분 잘잤다기보다는 피곤하다든지 힘들다든지 부정적인 답변을 합니다.

마치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게 말하는 것이 겸양인양 이런 말들이 습관적으로 배어나옵니다.

뉴스의 정치, 경제, 사회면을 보며 저래서 우리나라가 안되고 내 꼬라지가 이렇다며 기회만 생기면 이민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인생 100세 시대에 직장 생활은 길어야 4,50년인데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모른다며 우울한 미래를 전망합니다.

나와 남의 장점을 바라보고 칭찬하기보다는 험담과 비판을 주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정죄가 아니라 죄사함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보고 듣고 말하는 것들은 더 이상 이러한 비판과 비난,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나와 남들이 바라는 것이 성취된 기쁨과 사랑스런 감정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상상하고 축복하는 것이 내 안의 상상력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갖고 태어났으며, 내 안 깊은 곳에 하나님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제 잠재력, 무한능력이라고 불리는 내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야 합니다.

그 시작과 끝은 죄사함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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