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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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수식어가 더 이상 필요없는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2015년에 발표한 "빌 호지스"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 "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Finders Keepers)"입니다. 작가 "스티븐 킹"의 생애 첫 탐정소설이자 범죄소설이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출간 즉시 큰 히트를 하며 에드거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후속작인 이 작품 "파인더스 키퍼스" 역시 CWA 골드대거 롱리스트에 올려놓았습니다. 정말 엄청난 작가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대문호 "존 로스스타인"의 집에 삼인조 강도가 침입합니다. 그들은 "로스스타인"을 죽여 버리고 집안 금고에 있던 현금과 이 천재작가가 은둔하는 동안 이야기를 기록한 노트들을 훔칩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작가의 육필원고가 담긴 노트를 원했던 삼인조 중 한명인 "모리스 벨러미"는 나머지 둘을 죽이고 사건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기 위해 돈과 노트들을 트렁크에 넣고 자신만이 아는 곳에 묻어버리지만, 어이없는 사고를 쳐서 감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한 소년이 그 트렁크를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창조해 놓고 똥칠을 했어.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은 살아 있을 필요가 없지."

달콤한 깜짝 선물처럼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쓴 글을 한 단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는 뜻이로군."

 

1978년, 공식적인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채 18년 동안 은둔하던 "존 로스스타인"이 집안에 침입한 강도들에 의해 목숨을 잃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도들의 일원처럼 보이는 두 명의 시체 역시 발견되지만 죽은 작가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돈과 육필원고는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0년, "피터 소버스"라는 소년이 돈과 노트가 들어있는 트렁크를 발견합니다. 취업박람회에서 어떤 미친놈이 메르세데스를 몰고 질주한 덕분에 사정이 힘들어진 부모님을 위해 그 돈을 쓰기로 결심한 "피터"는 익명으로 4년 동안 집에 돈을 부치고, 점점 부모님 사이의 관계와 집안 분위기가 예전으로 돌아옵니다. 그 사이 엉뚱한 사고를 쳐서 종신형을 살고 있던 "모리스 벨러미"가 가석방을 하게 됩니다. 그는 오래전 자신이 좋아하는 시리즈의 주인공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작가를 죽인 남자입니다. 오로지 "로스스타인"의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독점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감옥생활을 버텨온 "모리스"는 트렁크가 텅 비어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됩니다. 그 무렵 노트 중 몇 권을 팔기로 마음먹은 "피터"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오빠의 상태가 심상치않음을 느낀 "피터"의 여동생 "티나"의 의뢰로 "빌 호지스"가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그게 결정적으로 네가 오해한 부분이야. 훌륭한 소설가는 등장인물들을 선도하지 않아. 그냥 따라가지. 훌륭한 소설가는 사건을 만들어내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을 주시하다가 목격한 그대로 기록하지. 훌륭한 소설가는 자기가 신이 아니라 비서라는 걸 알아."

 

메르세데스 살인마 사건을 해결한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 "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는 작품과 그 속의 캐릭터에 집착하며 애증을 넘어선 광기에 휩싸인 한 독자가 벌인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마치 "미저리"의 또 다른 버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대문호의 육필원고를 가지기 위해 살인마저 서슴없이 저지른 남자는 감옥으로 가게되고 시간이 흘러 문학에 조금씩 눈을 뜨던 한 소년 앞에 그 육필원고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전직 형사 "빌 호지스"가 끼어들게 되면서 이야기는 마치 아우토반을 달리듯 쉼 없이 전개됩니다. 전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와 비교하자면 추리소설 보다는 스릴러소설의 요소가 강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작가의 미공개 육필원고와 "모리스", "피터"의 이야기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와 "골룸", "프로도"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심지어 범죄소설의 중심이어야 할 캐릭터인 탐정 "빌 호지스"는 살짝 주변인의 자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물론 "빌 호지스"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중심축은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두 인물 "모리스""피터"의 이야기입니다.

 

로스스타인이 글을 쓰는 동안 내다보았을 산들이 보이는 그곳에서 공책을 읽는 거다. 그러면 소설의 둥근 맛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맞다, 그리고 소설의 위대한 점이 그것이다. 둥글다는 것. 결국에는 모든 게 균형을 찾는다는 것.

 

제목인 "파인더스 키퍼스"는 부제처럼 찾은 자가 갖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빌 호지스""홀리 기브니"와 함께 차린 탐정사무소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4년 전 비극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살도 빼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빌 호지스"는 아직도 뇌손상을 입은 메르세데스 킬러 "브래디"에게 집착하며 그가 입원한 병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수사하면서 조금씩 수사관으로서의 총기가 떨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66세이니 당연하겠지만 그걸 부정하고 싶은 듯 요즘 60대는 예전 40대라는 농담을 자주 언급하긴 하지만. "빌 호지스"의 조력자로 전편에 등장한 "홀리""제롬"도 역시나 등장합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강박증세를 앓고 있는 "홀리", 이젠 하버드 생이 된 "제롬". 이 삼총사는 삼부작의 마지막인 "End of Watch"에서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개 같은 일은 개무시하는 거다.

- 지미 골드 -

 

이젠 "스티븐 킹"이 어떤 문학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추리소설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에드거 상을 수상하더니 이번 "파인더스 키퍼스"는 CWA(영국 추리소설가 협회) 골드대거 후보에 올랐습니다. 물론 이전 작품들에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소설을 많이 접목시켰었지만 첫 작품으로 다른 작가들이 몇 십 년 동안 범죄소설을 쓰고도 평생 한번 타기 힘든 에드거와 골드대거라니... 거기다 이미 미국에서 출간된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End of Watch"는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뭐, 이런건 이젠 당연한 사실처럼 인식되었으니 놀랄 것도 없지만 그래도 새삼스럽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만의 말씀! 그건 내 의견에 불과하고 의견이란 건 똥구멍과 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플롯이 어쩌니, 문체가 어쩌니, 작가의 문학적 견해가 어쩌구 등등 이런 이야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스티븐 킹"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뭐라고 평하기엔 너무나 대단한 작가이기도 하고 "스티븐 킹"이 자주 말하듯 독자가 재미있어하면 나도 그걸로 됐다.라는 그의 말처럼 끝내주게 재미있었으니 저도 그걸로 됐지 않나?라는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 "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를 읽고 나시면 심상치 않은 엔딩 때문에 다음 작품인 "End of Watch"를 읽고 싶어서 안달이 나실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비극이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살짝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저는 이미 후속작이 번역 출간되는 내년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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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할로우 찰리 파커 시리즈 (구픽)
존 코널리 지음, 박산호 옮김 / 구픽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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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일랜드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코널리(John Connolly)"가 2000년에 발표한 사립탐정 "찰리 버드 파커"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다크 할로우(Dark Hollow)"입니다. 이 작품은 2001년 배리 상 British Crime Novel 부분 후보로 선정 되었습니다.

 

여전히 아내와 딸의 죽음에 죄책감과 슬픔으로 고통 받던 전직 뉴욕경찰 "찰리 파커"는 어머니의 고향으로 내려가서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집을 수리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합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여인의 간단한 부탁을 받아 일을 처리하던 중, "찰리 파커"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전 동시에 일어난, 관계없어 보이는 죽음들이 얽히면서 그동안 모두가 잊고 있던 과거의 악몽들이 다시 깨어나게 됩니다.

 

모두 치워버려야 했지만, 과거란 그렇게 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끝내지 못한 일들, 미처 하지 못한 말들 모두 결국엔 다시 마음속에 계속 떠오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이치이자, 세상의 메아리니까.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을 죽인 후, 어머니의 고향이자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메인 주의 스카보로에 정착한 "찰리 파커"는 외할아버지가 살던 집에 머물며 사립탐정으로서의 인생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전 남편 "빌리 퍼듀"에게서 도망친"리타"의 간단한 의뢰를 받은 "찰리 파커"는 "빌리"를 찾아가서 위자료의 일부를 받아 "리타"에게 건네주지만, 그것이 "찰리 파커"가 "리타"와 그녀의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 됩니다. 힘없는 약자인 여인과 아이의 죽음은 "찰리 파커"로 하여금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그는 이 모자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유력 용의자인 전 남편 "빌리"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가 얼마 전 스카보로에서 일어난 총격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빌리"로 인해 FBI, 캐나다 경찰, 갱단과 살인청부업자들이 메인 주로 모여드는 와중에 "찰리 파커"는 현재의 무관해 보이는 몇 건의 이야기들이 충돌해서 과거의 망령들이 숨어있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그 망령은 경찰이었던 "찰리 파커"의 외할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잡고 싶어 했었던 악마였습니다. 

 

학대받는 아내들과 매 맞는 연인들, 멍든 여자들과 불행한 아이들은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어떻게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건 그야말로 고집스럽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하지만 구원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자신에게 그런 구원의 빛이 비쳤을 때 그걸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찰리 파커" 시리즈 첫 작품인 "모든 죽은 것"이 국내에 출간되고 나서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 두 번째 작품인 "다크 할로우"가 출간되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아홉 번째 작품이 조용히 출간되긴 했지만...)

이 작품 "다크 할로우"은 "찰리 파커"가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인 연쇄살인범 떠돌이를 죽이고 몇 개월이 지난, 아내와 딸의 첫 번째 기일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전히 죄책감과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찰리 파커"는 사립탐정 면허를 신청하고 오래전 지인이었던 한 여인의 부탁을 받으면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 외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끔찍한 이름을 다시 듣게 됩니다. "칼렙 카일". 현재의 살인사건들은 마치 운명처럼 "찰리 파커"를 과거의 연쇄살인으로 초대하고, 모두가 실존 인물이 아닌 지어낸 유령이라고 믿었던 "칼렙 카일"은 점점 실체를 드러내며 "찰리 파커"를 메인 주의 작은 마을 다크 할로우로 유인합니다.

기본적으로 탐정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추리소설, 탐정소설의 구조를 지녔지만 피 튀기는 액션을 포함한 적당한 활극과 유머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 아니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정서는 공감과 연민입니다. 지금 보자면 좀 구식 탐정인 "찰리 파커"는 죽은 자들을 보며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죄 없는 죽음에 슬퍼하며 약자들을 구하기 위해 폭력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 내내 "찰리 파커"는 힘없는 희생자들 모두를 위해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시리즈에는 다른 탐정 소설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유령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이 "찰리 파커" 시리즈를 초자연 스릴러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령의 존재란 "찰리 파커"가 죄책감에 만들어낸 환각이나 환상 혹은 꿈처럼 그려지고 이들의 존재 이유는 "찰리 파커"가 죽은 자들을 잊지 않고 계속 연민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로만 등장합니다. 중요한 사건의 퍼즐을 단순하게 해결하려고 존재하는 초자연 현상 따위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등장인물들인 흑백 동성연애 커플 "앙헬"과 "루이스"의 존재 역시 범죄자와 형사로 만난 사이였지만 "찰리 파커"가 모두에게 버림받았을 때 그의 상황에 공감하며 곁에 있어줌으로써 이 시리즈의 중요한 축이 됩니다. 물론 이 시리즈의 개그의 8할 정도는 이 커플이 담당하긴 하지만...

 

"우리가 존재하려면 강간범들, 살인자들, 도둑들과 마약상들이 있어야 하지. 그들이 없다면 우린 아무 쓸모가 없어. 그들이 우리의 직업적인 삶에 의미를 주는 거지. 그리고 위험도 같이 존재한다, 찰리. 일을 하다보면 너의 인생을 침범하려고 하는 놈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루가 끝나고 배지를 벗어서 놔둘 때도 도저히 그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인간들이 생긴단 말이지. 그놈과 싸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의 친구들, 가족 모두 그자의 그림자에 더럽혀지고 말아. 그런 놈은 널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지. 그놈의 삶이 확대돼서 네 삶이 돼버리고, 네가 그놈을 찾지 못하면, 네가 그놈을 끝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놈 생각이 날 것이다. 내 말 이해하겠니, 찰리?"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존 코널리"는 최초로 비미국 작가로서 셰이머스 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그는 공감과 동정심 하면 떠오르는 범죄소설 작가 "로스 맥도널드"를 가장 존경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이 시리즈를 씁니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많은 상의 후보로 오르는 실력파 작가인 만큼 상당히 글을 잘 씁니다. 솔직히 저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중에서 글 솜씨가 별로였던 작가는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장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플롯이나 현실감 넘치는 대사들 뿐 아니라 그냥 배경을 묘사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훌륭합니다. 노트에 베껴 적어놓고 싶을 만큼. 그래서 저는 "존 코널리"가 쓰는 몇몇 청소년 소설들도 나오면 바로 구매해서 읽습니다. 단지 그의 문장들을 읽고 싶어서.

 

"그래, 그 사람은 고통을 겪었어. 참 대단하시네. 살면서 그 정도 힘들어보지 않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고통을 당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야, 너도 알잖아.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도 고통스럽게 살고 있고, 그중에 또 일부는 너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거야. 연민의 본질은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게 아니야. 그건 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건, 네가 아무리 운이 좋건 불운한 인간이건 상관없이 계속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거야. 네가 거기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다면 하는 거고, 그렇게 할 때 징징거리거나 세상 사람들 다 보라고 네가 지고 있는 그 빌어먹을 십자가를 휘둘러선 안 돼. 네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게 옳은 일이기 때문이야."

 

이런 저런 말이 길어지긴 했지만 결론은 "다크 할로우"는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플롯이 좀 복잡하긴 하지만 복잡한 미로를 통과해서 선명하게 보이는 결말 부분에 도착하게 되면 상당한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첫 작품"모든 죽은 것"과는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 작품 "다크 할로우"에 이어서 후속인 "The Killing Kind"도 조만간 같은 출판사인 구픽에서 출간된다고 합니다. 바램이라면 "찰리 파커"와 "앙헬" 그리고 "루이스", 이 기묘한 삼인조를 정말 오랫동안 만나고 싶습니다. 탐정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한동안 지속되던 제 독서불감증을 날려준 아주 멋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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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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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4일 범죄소설 장르에서 가장 유명한 행사 중 하나인 '바우처콘'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앤서니' 상 수상작들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역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권위 있는 범죄문학상들인 '에드거', '배리', '매커비티', '앤서니' 상의 최우수 작품상을 모두 석권한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이 4개의 상의 수상 이외에도 '딜리스' 상 등 몇 개의 상들을 더 수상한 그 작품은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 "윌리엄 켄트 크루거(William Kent Krueger)"의 "철로 된 강물처럼(Ordinary Grace)"입니다.


1961년 여름, 열세 살 소년 "프랭크 드럼"은 같은 동네에 사는 동년배 소년의 죽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약간의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조롱과 놀림을 당하던 외톨이 소년의 죽음은 "프랭크 드럼"이 그해에 직간접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죽음의 시작이 됩니다. 사고사, 자연사, 자살 그리고 살인... 무더운 여름의 이 죽음들은 열세 살 소년의 일상을 뒤흔들고, 소년의 삶은 그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버립니다.


노래를 들으니 바비가 죽은 것이 바비를 위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귀여운 소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 잔인한 조롱과 모욕을 더 이상 견뎌낼 필요가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 나이 든 부모님이 자기를 보호해주고 보살펴줄 수 없게 될 때 자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하나님이 최고의 선의로 바비 콜을 데려가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네소타 주 뉴 브레멘 외곽의 선로 위에서 "바비 콜"라는 소년이 열차에 치여 죽습니다. 지역 목사의 아들인 "프랭크 드럼"은 자신과 동갑이었던 이 소년의 죽음으로 인해서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던 "바비 콜"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열차가 오는 소리를 못 들어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몇몇 사람은 소년이 장애가 있지만 귀는 이상이 없다며 죽음에 의혹을 가집니다. 떠도는 의혹들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프랭크"는 자신도 동생과 함께 자주 놀러가던_부모님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던_사고 장소인 철로에 가고, 그곳에서 죽은 남자의 몸을 뒤지고 있던 원주민 노인을 목격합니다.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원주민과 시체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 "프랭크"와 동생 "제이크"는 원주민 노인에게 이 떠돌이가 갑자기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경찰에 시체를 발견한 사실을 신고한 "프랭크"과 "제이크"는 원주민 노인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하고 얼마 뒤, 뉴 브레멘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상실이 확실해지면 그것은 손에 쥔 돌멩이와 같다. 무게가 있고 크기가 있고 질감이 있다. 단단하고, 평가와 처리가 가능하다. 그것을 들어 자신을 칠 수도 있고 그냥 던져버릴 수도 있다.


중년의 남자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던 1961년 여름에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는 구성으로 된 "철로 된 강물처럼"은 죽음과 비극, 속죄, 구원, 용서 등을 통해 무너진 삶을 견디고 일어나서 다시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서 힘든 성장통을 겪는다는, 별로 새롭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제가 읽어본 바로는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장르를 떠나서 너무나도 훌륭한 문학작품입니다.

마을에서 존경받는 목사인 아버지, 아름답고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자상한 누나, 조숙하고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동생과 나름 행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소년 "프랭크 드럼"에게 열세 살이 되던 1961년 여름은 잊지 못할 여름이 됩니다. 목사인 아버지 때문에 죽음을 자주 접해봤던 "프랭크"에게 동년배 동네 소년의 죽음과 자신이 발견한 떠돌이 남자의 시체는 죽음이라는 사실에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장애로 인해 온갖 조롱과 놀림을 받던 소년과 연고지도 없는 부랑자같은 떠돌이 남자의 외로운 죽음은 어쩌면 하나님의 작은 축복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프랭크"와 그의 가족에가 찾아 온 순간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 되어버리고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자신에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비극으로 느끼게 되는 슬픔과 좌절, 분노는 열세 살 소년에게 버겁기만 하고, 행복했던 자신의 가족이 그대로 무너져 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잠식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어린 자신이 몰랐던 어른들의 세계를 알아가며 세상을 알게되고 어쨌든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이치를 배워가게 됩니다. 그렇다고 가슴에 뚫린 구멍이 영원히 메꿔지지는 않겠지만.


아버지는 말을 더듬는 작은아들과 불량 청소년으로 자라고 있는 큰아들, 구순구개열을 앓고 있고 밤에 어딘지는 하나님만 아시는 곳에 갔다가 몰래 집으로 숨어드는 딸, 그리고 남편의 직업을 못마땅해하는 아내로 이루어진 집안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자기 자신이나 우리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도 바비 콜의 부모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모리스 엥달이라는 개자식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을 대신하여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잔인한 은총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오는 비극 때문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원제에 나오는 단어 "Ordinary"와는 다르게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눈이 멀었거나, 귀가 안 들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의 신체적 장애, 그리고 편견과 피부색으로 재단되어버린 사람들, 남들과는 다른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전쟁 등의 상처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 등.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평범, 정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상처와 장애를 숨기고 살며 다른 사람들의 작은 단점이나 장애로 쉽게 편견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듯 합니다.


우리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과 한순간 보고 지나친 것들에 관해 뒤죽박죽 엉켜 있는 기억들을 가지고 재구성한다. 우리의 역사는 내 아버지의 몸처럼 이쑤시개로 만든 구조물이다. 그러므로 내가 뉴 브레멘에서의 마지막 여름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빛 속에 서 있는 것들과 내가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있어서 상상으로 그려보는 것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사실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이 '에드거' 상 후보에 오르고, 작품상을 수상했을때 그 동안 작가 "윌리엄 켄트 크루거"를 철저히 외면했던 '에드거' 심사위원들의 보상판정이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꽤 있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줄거리가 딱 '에드거' 노땅들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그 후로 각종 작품상들을 휩쓸면서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이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윌리엄 켄트 크루거"는 그동안 원주민과 백인 혼혈인 전직 형사 "Cork O'Connor" 시리즈로 인기를 모으던 작가였는데 두 번째 스탠드언론인 이 작품으로 자신의 커리어 정점을 찍어버렸습니다. 철로에서 죽은 장애소년, 미심쩍어 보이는 자연사, 이방인, 사라진 소녀 등 초반부터 흔한 클리셰들이 계속 등장할 때는 저도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건 걸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도 교묘하고 자연스럽게 의혹들을 곳곳에 심어놓으며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아름다운 문장을 책 곳곳에 뿌려놓은 작가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거기다 얼마든지 가슴 아프고 절절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감정의 과잉 없이 펼쳐내서 오히려 너무나 쉽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제로 비극적 전개가 될 것 같은 순간 몇 번이나 책을 덮고 쉼 호흡을 하고 읽었습니다.


"내가 철도 선로를 왜 좋아하는지 아니? 항상 저기 있지만 또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지."

"강물처럼요." 제이크가 말했다.

나는 제이크가 말을 해서, 그것도 더듬지 않고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 낯선 사람과 있을 땐 지독히도 말을 더듬는 아이인데. 원주민은 내 동생을 보면서 제이크가 위대한 지혜를 말하기라도 한 것처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로 된 강물처럼." 그가 말했다. "똑똑하구나, 얘야, 정말 똑똑해."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원제에서도 알수 있듯이 종교적 색채도 띄고 있고, 소재자체도 상당히 미국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보편적이고 쉽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국내 제목이 "평범한 은총"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란 점이 살짝 아쉽지만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사실 저는 이미 올해 이 작품을 뛰어넘을 소설은 없을 거라는 확신까지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적 구분을 떠나서 문학작품 그 자체로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 수 록 더욱 더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높아질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단어 쉽게 쓰지 않는데 이 작품 "철로 된 강물처럼"은 걸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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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블라인드
라그나르 요나손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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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작가 "라그나르 요나손(Ragnar Jónasson)"이 2010년에 발표한 데뷔작 "스노우 블라인드(Snow Blind/Snjoblinda)"입니다. 대학 강사, 변호사로 활동하기 전인 17살 때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아이슬란드어로 번역했었던 작가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아이슬란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현대적 상황에 고전 추리소설의 요소를 심어놓은 작품입니다.


경찰대학 졸업반인 "아리 토르 아라손"은 북부의 작은 어촌 "시클루 피요두르"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조용하고 외진 어촌 도시의 생활에 적응도 제대로 하기 전에 "아리 토르"는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가 계단에서 실족사한 현장으로 출동하게 됩니다.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는 "시클루 피요두르"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은 큰 화젯거리가 되고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합니다. 두 사건의 작은 공통점은 이 작은 어촌이 묻어두었던 비밀과 연결된 작은 끈이 됩니다.


그날 밤 마을을 빙 둘러 에워싸고 지켜주는 산들은 새하얗게 물들어 산마루들이 보일락 말락 했다. 그 산들이 지난 며칠 동안 마을을 수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해, 꼭 짚어 설명할 수 없는 무엇, 어떤 위협이 몰래 마을로 침투한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날 밤까지.

그녀는 뒤뜰 한가운데 누워 있었다. 눈의 천사처럼.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가 되었던 "아리 토르"은 신학공부를 중간에 포기하고 경찰 대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곧 졸업을 하게 될 "아리 토르"는 의대생인 여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뜬금없이 아이슬란드에서 북극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시클루 피요두르"에서의 일자리 제안을 받게 됩니다. 불경기가 아이슬란드, 특히 수도인 "레이캬비크"를 덮치고 있었기에 덜컥 발령 제의를 수락해버린 "아리 토르"는 큰 눈으로 눈사태가 나면 출입이 불가능해서 고립되어 버리기가 일수인 아이슬란드의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어촌으로 가게 됩니다. 이 마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 고참 경찰의 말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아리 토르"는 고향인 "시클루 피요두르"로 내려와 생활하던 베스트셀러 작가 가 죽은 현장으로 출동하게 됩니다. 실족사의 가능성이 커보였지만 조금 더 확실하게 조사하려던 "아리 토르"는 조용히 마무리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벽에 가로 막혀버립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죽음은 작은 도시를 아이슬란드 화제의 중심으로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의 한 여인이 반라의 상태로 집 마당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됩니다. 연달아 벌어진 이 두 사건으로 동요하기 시작하는 작은 어촌 도시에 설상가상으로 엄청난 눈보라가 몰려옵니다.


"이건 딱지나 떼 주는 일이 아니야. 오히려 정반대지. 여기는 워낙 소수의 지역사회라 우리는 단순한 동네 경찰 이사의 존재란 말일세. 최대한 딱지를 적게 떼는 게 오히려 우리가 할 일이야! 자네도 곧 저 남부와는 일처리 방식이 아주 다르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워낙 유대가 끈끈한 사회라서 말이야. 걱정말게, 좀 지나면 다 알게 될 거야."


아이슬란드 범죄소설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작가 "라그나르 요나손"의 "다크 아이슬란드"시리즈 첫 작품이자 데뷔작인 이 작품은 현대가 배경이지만 고전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많은 요소들을 가진 작품입니다. 살인의 무대는 폐쇄되어가는 작은 공간이며, 용의자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사람들이고, 수사관이 외지인이자 이방인인 점도 그렇지만 단서들이 밝혀지는 과정과 범인이 밝혀지는 전개는 고전적 분위기를 품고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인 아이슬란드의 최북단의 작은 어촌 도시인 "시클루 피요두르"는 청어가 풍부했던 시절에 잠시 풍요를 누리다가 이젠 몰락해가는 곳입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은퇴해서 고향으로 온 늙은 사람들이거나 어쩔 수 없이 남아있는 토박이 그리고 과거를 잊기 위해 찾아온 소수의 외지인들입니다.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노인의 죽음과 그 뒤 연달아 발생하는 사건으로 이 작은 도시는 반갑지 않은 활기를 되찾게 됩니다. 밤에 문을 잠그는 집도 없고, 주민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며 소문과 비밀이 순식간에 퍼지는 이곳에서 24살의 초짜 경찰인 "아리 토르"는 자신의 첫 사건에 열의를 가지고 수사를 하려 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가 이 도시 사람들 사이에 조화롭게 스며드는데 장애만 될 뿐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사태로 도시는 고립되고, "아리 토르"는 이 폐쇄적인 상황에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상황이 됩니다.


아리 토르는 당혹감에 가까운 감정으로 동료 경찰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잘 아는 마을에서 이 사건을 밑바닥까지 파헤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오랜만에 읽는 아이슬란드 작품인데 여전히 이 나라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고요하고 차분한 차가움이 이 작품 "스노우 블라인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또 다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지만 긴박하다기 보다는 상당히 정적으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건 재미가 없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소설이 후반부로 갈수록 도시는 눈사태로 고립되어가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해지지만 그 과정이 급작스럽다기 보단 상당히 조용하고 부드러워 어느새 그 흐름에 따라 _아마도 작가가 의도한 듯 한_ 읽는 사람은 스스로 눈치 채기 전도에 이야기에 동화됩니다. 중심이 되는 사건의 동기 역시도 요즘 범죄소설과 비교해 상당히 인간적인 동기입니다.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눈의 무게에 짜부라지고 있었다. 이젠 겨울의 포옹이 아니라 예전에 없던 위협이 느껴졌다. 백색은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다. 핏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오늘 밤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글 것이다.


공교롭게도 연달아 읽은 작품들이 북유럽 소설에 '스노우'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두 권의 분위기는 정반대입니다. 물론 눈과 피를 다루는 부분 같은 몇몇 묘사에 있어서 공통점을 보이긴 합니다만. 이 작품 "스노우 블라인드"가 영국에서 판매 1위를 찍으며 성공하고, 작가의 "다크 아이슬란드"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시작하게 만들었지만 데뷔작이 가지는 소소한 단점들도 눈에 띕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상당히 준수한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준수함 이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결말 부분 역시도 나름 현실적이어서 좋았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후회없는 독서가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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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온 스노우 Oslo 1970 Series 1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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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가 2015년에 발표한 "블러드 온 스노우(Blood on Snow/Blod på snø)"입니다. 이작품은 1970년대의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하는 느와르 작품으로 예초에 "Tom Johansen"라는 필명으로 발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 결국 본명인 "요 네스뵈"로 발표되었는데, 다행이도 원래 계획했던 오슬로 느와르 연작인 "Midnight Sun/Mere blod"까지 큰 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이렇게 된 사연은 책 뒤편에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범죄조직의 해결사로 일을 하는 "올라브 요한센"은 어느 날, 조직의 보스에게 자신의 아내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보스의 아내를 죽이기 위해 보스의 집 맞은편에 있는 호텔에서 감시를 하던 "올라브 요한센"은 한 젊은 남자에게 강제로 추행당하는 보스의 아내를 목격하고 자신이 죽여야 할 타깃을 변경합니다.


내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인 것은 아니다. 그가 벽에 핏자국을 남기며 주저앉기도 전에 난 그 말부터 했다. 그 말을 듣는다고 해서 그가 자신의 죽음을 더 쉽게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의 총에 맞는다면 차라리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이기를 바랄 테니까.


1975년 오슬로,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올라브 요한센"은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명령을 받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직의 보스가 자신의 아내를 죽이라는 명령. "올라브"는 보스의 아내를 죽이기 위해 바로 감시를 시작하지만 곧바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듭니다. 꿈에 그리던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었지만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운 "올라브"는 젊은 남자에게 강간당하는 보스의 아내를 목격하게 되고 그 남자를 따라가 죽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올라브"의 인생은 꼬여버립니다. 결국 보스의 아내를 데리고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집으로 피신한 "올라브"는 자신이 몸 담았던 조직의 추격을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바람과 눈송이, 이 둘은 밤이면 문을 닫는 부둣가 창고들 사이의 어둠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다 마침내 싫증 난 바람이 파트너를 벽 옆으로 내던지자, 바람에 휩쓸려온 메마른 눈송이들이 한 남자의 신발 주위로 내려앉았다. 방금 내가 쏜 총에 가슴과 목을 맞은 남자였다.


오래된 느와르 영화나 소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판에 박힌 이야기의 시작과 흡사하게 시작하는 이 작품 "블러드 온 스노우"는 끝까지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익숙한 이야기로 전개되다가 끝을 냅니다. 거기다 언제나 4~500페이지 이상의 작품들을 내놓던"요 네스뵈"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짧은 분량으로 오슬로 1970의 첫 작품을 끝내버립니다. 전형적이고 익숙한 짧은 이야기.

하지만 이 작품은 특별합니다. 특별함의 가장 큰 부분은 작가의 글이 아닐까 합니다. 문장, 묘사... 뭐가 됐던. 긴 이야기에 긴 문장들을 주로 썼던 "요 네스뵈"는 이번 작품에서 그동안 자신이 쓰던 글들과는 다르게 문장 하나하나를 짧게 줄이고 의미를 함축시키려는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습니다. 어둡고 아름다우며 애처로운 이 작품의 분위기는 거의 작가의 짧지만 밀도 높은 문장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눈과 피가 섞이는 순간의 잔인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도입부를 지나서 마지막 장면을 구성하는 문장들까지, 짧지만 공들여 함축시킨 모든 문장들이 이 짧은 소설을 풍부하게 만들어줍니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이렇다. 나란 인간은 천천히 운전하는 데 서툴고, 버터처럼 물러터진 데다 금방 사랑에 빠지며, 화나면 이성을 잃고, 셈에 약하다. 책을 좀 읽기는 했지만 아는 게 별로 없고 쓸만한 지식이라곤 더더욱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속도보다 종유석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그러니 다니엘 호프만이 나 같은 인간을 어디에 써먹겠는가?

그 답은 (여러분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해결사다.

 

오래된 하드보일드, 느와르 소설이나 영화의 이야기들과 흡사하니 그런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들 역시 모두 등장합니다. 킬러, 보스, 결코 사랑하지 말아야할 보스의 여자, 반대편 조직의 보스와 그 일당 그리고 팜므 파탈...

하지만 주인공 "올라브 요한센"은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 가장 불쌍하고 애처로운 범죄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든 부분에서 모자라고 난독증까지 있는 그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할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그동안 자신이 삶을 대하던 태도와는 정 반대로, 위험하고 과감한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진심을 깨닫지 못한 채, 모자란 자신과 정 반대인 완벽한 여인과 함께하는 여정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비극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나마 잠시 좋은 꿈을 꾸었다는 것이 "올라브 요한센"에게 작은 위안이 되겠지만.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몸에 얇은 얼음 살갗이 돋아나고, 그 아래로 얇고 푸른 정맥이 생겨난 것 같았다. 피를 흠뻑 빨아들인 눈사람처럼.

 

사실 이 작품 "블러드 온 스노우"는 작가 "요 네스뵈"의 팬들이 작가에게 당연하게 기대하는 소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동안의"요 네스뵈" 소설을 기대하시며 읽으신다면 뒤통수를 세게 맞으실 겁니다. 그리고 분명 실망하게 되는 분들도 계실테고. 하지만 저에겐 이 작품은 "요 네스뵈"의 소설 중 상위권에 올려놓을 정도로 좋은 소설입니다. 원래 글을 잘 쓰는 작가인건 알았지만 이정도로 훌륭한 글 솜씨를 지닌 작가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저에게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입니다.

예전부터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을 쓰고 싶었다던 "요 네스뵈"의 첫 시도는 저에게 제대로 먹힌 것 같습니다. 마치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짐 톰슨"과 "엘모어 레너드"가 같이 쓴 작품 처럼 느껴집니다. 고전 하드보일드, 느와르를 좋아하신다면, 그리고 어둡고 슬픈 범죄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결코 후회 없으실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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