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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1년 4월
평점 :
나는 책과 관련된 장소에 가는 것이 큰 행복이라 여긴다. 도서관, 서점, 중고서점등이 내가 갈 수 있는 행복의 장소이다. 올 여름 그동안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행복의 장소인 헌책방에 달려갔었다. 겨울에 읽었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의 작가 은희경씨가 떠 올랐다. 으레 하듯이 검색을 통해 은희경씨의 소설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번에 읽게된 "마이너리그"였다.
헌 책방에서 사 온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고 뿌듯해 하는 것과 책을 뽑아 읽는 것은 또 시간의 갭이 필요하다. 4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온통 파란색인 이 책은 흡사 "멍"들어 있는 듯한 우울한 느낌이 확 다가오는 책이다. 마이너리그. 단어 자체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꿈은 있으나 꿈을 이루지못한 상태. 세상이 주목하는 메이저 리그와는 다른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인 마이너 리그.
이야기의 시작은 한 지방도시의 남자 고등학교 교실이다.
차렷! 경레! 검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티자를 든 교사. 체벌을 가장한 폭력. 지금 현대 교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의 나열을 통해 아~ 요즘 얘기는 아니구나를 깨닫는다.
물리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벌을 당하고 놀림을 당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뜻과 아무 상관없이 엮이게 된 고등학생 4명. 이야기의 화자인 나, 김형준. 가슴팍만 단단한 장두환, 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조국. 얼굴 하얗고 여학생들에게 주목받는 배승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힌 만수산 4인방의 이야기는 학교 시절 애피소드는 씁쓸하긴 해도 헛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 이야기는 참 마음아팠다. 유신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 전두환 정권에서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의 삶. 주류가 아닌 비주류.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슬픈 삶을 꾸역 꾸역 살아가는 4명의 이야기가 정말 슬펐다.
90년대, 80년대를 복기하는 드라마, 영화가 많은 요즘.
너무 어린 나이에 보낸 70년대를 간접경험할 수 있는, 그러나 슬픈. 견디기 어려운 소설이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