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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삼킨 소년 - 제3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평점 :
긴 연휴를 맞아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 봤다. 몰입도가 높은 일본 소설이 좋겠다 싶어 일본 소설 코너에 갔는데 "침묵을 삼킨 소년"이란 책이 눈에 띄였다. 작가는 야쿠마루 가쿠라고 전혀 인지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를 살펴보니 꾸준히 청소년 범죄에 관심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도 청소년 범죄가 화두가 되고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교육 제도를 갖고 있는데 청소년 범죄는 어떠할까 상당히 궁금했고 이를 어떻게 묘사했을 지도 궁금하여 선택하여 읽어보기로 했다.
소년 범죄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서술이 앞 부분일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중 2 쓰바사의 이야기보다 쓰바사의 아버지인 요시나가 삶부터 먼저 묘사된다. 한 건축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인정 받는 요시나가는 이혼남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 속에 아들 쓰바사는 존재의 의미가 미미하다. 엄마 준코가 데리고 살기 때문이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도 우리나라 아이들도 아버지의 삶속에 의미를 찾기 어렵다. 아버지는 회사때문에 늦게 돌아오고,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는 주말에 소파에 널부러져 있을 때 발견된다는 것도 일본과 비슷하다. 그런 요시나가에게 경찰이 찾아 오고 아들이 같은 반 친구를 죽이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엄마 준코를 만나지만 준코는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다는 신경질적인 반응 뿐이었고, 요시나가는 변호사를 찾아 맡기고 회사에는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거짓말로 둘러 대고 조퇴를 하며 아들 면회를 한다. 그러나 쓰바사는 변호사와 요시나가의 면회에 지속적인 침묵으로만 대응한다. 아버지 요시나가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아들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들과 주고 받은 연하장을 보고, 사건 현장을 찾아 보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아들이 범죄를 저지른 배경에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아들이 살해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퇴직을 강요받지만 굴하지 않고 견디면서 아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실로 눈물겨운 부정이었다. 같이 살지 않았지만 아들에 대한 믿음, 아들에게 시간을 투자해 주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으로 견디는 현실을 내 현실이라고 상상해보면 나도 그렇게 꿋꿋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면서 내 아이의 진실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결국 아들을 침묵에서 구해내지만 아들은 범죄자가 되었다. 범죄자가 된 후 아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냉랭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아들을 반성하게 만들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끔 이끌어주는 요시나가의 사랑이 대단했다. 이 과정에서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소외되는 것이 다소 안타깝기는 했다.
대부분의 범죄 소설들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범인은 누구인지에 촛점이 맞춰줘있다면 이 소설은 범죄가 이루어지고 난 뒤 사회의 대응방법, 부모의 대처 방법 등이 주로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이 소설을 읽는 어른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청소년 범죄가 심각하다. 범죄가 발생하고 나면 부모,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는 초토화된다.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가정의 문제, 학교의 문제가 있다고 보기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족 관계에 해결방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빠르게 현대화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 왔고, 그 희생이 가정의 파괴로 연결되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요즘에는 매주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하고 아버지들의 이른 퇴근을 종용하나, 집에 와 봐도 아이들은 학원을 떠도느라 부모와 마주 할 시간도 없는 현실이다.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아이들에게 시기, 질투, 미움이 가득찬 정서를 만들어주고 있는 현재의 교육제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시간도 없이 회사에 일생을 바쳐야만 하는 근무환경 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소외된 아이들에게 사랑을 채워줄 방법은 요원하다. 가정이 가정다운 사회. 그래야 침묵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