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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ㅣ 마카롱 에디션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2학년때로 기억된다. 담임 선생님께서 결근 하셔서 다른 선생님께서 우리반에 들어오신 것으로 기억한다. 갑자기 우리반에 오시게 된 선생님은 무엇을 할지 정하지 못하셨던 까닭인지 이야기 재미있는 것 하나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몇 마디 시작하자 시끌벅적하던 우리반은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 기억해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침묵 속에 60여명의 학생들이 오직 한 사람의 말에 집중했다. 그 이야기가 바로 "소공녀"였다. 소공녀의 고생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고 다시 찾아온 행복에 정말 다행이라면서 한참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부모님들께서 삶이 바빠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할머니가 계시는 집에서는 자기 전에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으니 소공녀 같은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신기한 이야기였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도 그 이야기가 읽고 싶어 부모님께 책을 사달라고도 해 봤지만 알았다고 다음에 사 주시겠다고 하셨다. 집안의 형편을 알았던 나는 언젠가 기회가 찾아 오겠지 싶어 참고 있었는데 친구 집에 갔다가 명작 동화 시리즈 중에 다소곳이 꽂혀 있던 소공녀를 보고 어찌나 반가웠든지... 그 뒤로 나는 친구집에 놀자라는 핑계를 대고 책을 읽으러 갔고 삼총사, 보물섬 등의 명작 동화를 엄청 읽었다. 사실 내 독서인생의 시작점이 바로 소공녀이며 어릴적 이름모를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 뒤 나는 내가 읽은 동화들이 일본의 번역을 거친 2중 번역의 산물이며,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번역되느라 사라진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완역본을 읽어 보려 노력을 했는데 이제서야 나와 인연이 닿았다.
「펭귄클래식 마카롱 시리즈」는 소공녀, 피터 팬, 거울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물섬, 크리스마스 캐럴,어린 왕자 등 7권으로 이뤄진 시리즈이다.
난 사실 "소공녀"라는 일본식 제목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공주" 즉 "A Little Princess"라는 원제를 그대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세라 크루 이야기" 등 아이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교정해야 한다.
펭귄 클래식에서 내 놓은 소공녀는 약 360 페이지의 적지 않은 분량이다. 개정 완결판에 부치는 글이라 하여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글이 먼저 실려 있다. 소공녀는 한 번에 쓰여진 글이 아니라 원본의 글이 있었고, 연극으로 올려 졌다가 다시금 보조 주인공을 추가하며 오늘날의 소공녀로 탄생되었다. 그 개정판에 쓰여진 작가의 글도 같이 옮겨져 있다. 버넷 자신이 영국에서 태어났다가 아버지를 잃고 미국으로 옮겨와서 어렵게 살았는데 그 이야기가 소공녀 속에 녹아 있다. 1900년대에 쓰여진 글이라 다소 어색한 부분도 없지 않은데 특히 글의 시점이 오락가락 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다가 1인칭 시점이었다가 통일성이 부족한 것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글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번역한 것 같아서 오히려 재미있었다. 소공녀의 줄거리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른들이 읽기에는 쉽게 동화할 수 없는 점이 많다. 부잣집 딸에서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으나 절대 실망하지 않고, 슬픔에 오래 빠져 있지 않았다. 현실을 딛고 일어났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신을 무너뜨린 교장에게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대면하는 장면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권선징악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 세라의 절망도 새로운 희망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세라가 학교 하녀인 베티에게 우리는 똑같은 여자애라고 주장하며 같은 장소에서 이야기 하고 듣는 걸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작가는 그런 평등 의식을 가지지는 못했다. 왜냐면 마지막 부분에서 베티가 여전히 세라의 하녀로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서는 최대한의 자비였을지도 모르겠다. 현대의 눈으로 보기엔 다소 앞 뒤가 안 맞는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착한 일을 하며 꿋꿋하게 견디고 참으면 하늘의 도움이 있을거라는 예시를 보여 준 이야기이기때문에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 동화 버전이 아닌 원본 그대로 읽을 수 있는 펭귄의 시리즈물 정말 좋다.
가능하면 7권 모두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