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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1 - 이수연 대본집
이수연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8월
평점 :
올해 후반기에 어떤 드라마가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드라마를 꼽으라면 "비밀의 숲"을 말하겠다. 조승우와 배두나의 연기도 정말 좋았지만 한 회 한 회 볼때마다 스토리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고, 작가가 누구인지를 찾아 보았다. 이수연 작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알아보니 입봉 작가란다. 이렇게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입봉 작가라니..
감탄을 하며 드라마 보기를 끝냈는데 온라인 서점에서 대본집을 판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선주문 했고 1주일 정도 기다려서야 받게 되었다.
습관대로 책 날개의 작가 소개를 먼저 봤다. 회사생활 4,5년하는데 행복하지 않았단다. 퇴사후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서 공부하고 10여년 혼자 글을 썼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것, 쓰는 것,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해서 10년을 글만 쓰고 살았다 한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회사 생활 도중에 그만 두다니 용기가 대단하고, 10년이란 세월 글을 쓴 꾸준함이 위대했다.
이번 작품인 비밀의 숲을 쓰기 위해서는 3년동안 준비했다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엄청나게 많은 자료 조사를 하고 준비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3년이란 긴 세월을 한 작품을 위해 보냈다고 하니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비밀의 숲은 1,2 두 권으로 제작되었는데, 1권은 8회까지, 2권은 16회(최종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앞 부분에는 이 드라마를 기획하게 된 의도, 주요 등장인물의 소개, 그리고 제일 고마웠던 용어 정리가 나와 있다. 시나리오는 처음 읽어보는데 시나리오 읽는데 필요한 각종 용어 예를 들어 Flashcut, C.U.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TV에서 이 프로그램을 볼 때 처음부터 작정하고 본 것이 아니라 채널 탐색 중 배우 조승우가 나의 레이더에 걸려 본 것이라 첫부분은 잘 모르는데 책에서는 황시목의 뇌수술 장면에서 시작된다. 뇌섬엽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발달하여 작은 소음도 못 견디는 시목을 위해 제거하는 수술이다. 이 수술의 부작용으로 시목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시목에게 이런 캐릭터 설정을 한 것이 다소 아쉽기도 했다. 시목처럼 감정이 사라져야만 부패와 싸울 수 있단 말인가? 감정이 있으면 부패에 오염되고 마는 걸까? 어쨌든 감정이 제거된 시목은 오염통에 빠진 대한민국을 건져낼 강단 있는 검사로 등장한다. 검사 스폰서였던 박무성의 죽음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그 죽음에 얽혀 있는 부패의 정체를 알아가는 시목의 옆에는 정의롭고 따뜻한 한여진 경위. 두 사람이 펼치는 하모니는 보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어하는 일 중 하나가 "영화 보고나서 그 책을 보는 일"인데 나의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인데, 이번 시나리오 읽는 작업은 그렇지 않았다.
조승우, 배두나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기때문이겠지만, 대사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내귀엔 문장이 자동 재생되어 귀로 들리는 착각에 빠졌다. 내가 잘 못 읽으면 배우도 잘 못 연기하고, 내가 또 다른 억양으로 읽으면 또 다른 억양으로 배우들이 내 눈 앞에서 연기해 주었다. 시나리오 읽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다. 흔히 지문이라 불리는 배우의 행동을 지시하는 부분도 어쩜 그렇게 상세한지 내가 읽는대로 배우들이 연기해 주었다. 내가 만약 드라마를 보지 않고 시나리오를 읽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런 완벽한 상상은 할 수가 없었겠지? 멋진 배우들이 연기해 주는 내 머리속이 정말 흐뭇하고 좋았다.
작가가 이끄는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등장 인물 한 명 한 명이 의심스럽고 다 부패된 인물인 것 같아서 굉장히 긴장하며 읽어야 했다. 무엇보다 책 속에 묘사된 부조리들이 실제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작가가 미래에서 돌아와서 썼나 싶을 만큼 현실적이었다. 군인 장교들의 병사들에 대한 갑질, 국민의 행복을 지키고 이루어야 할 검사들, 형사들의 부정 등에서 상당히 마음 아팠다. 그러나 작품 중에 정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끝까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 나간 사람이 있듯이 현재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우리 국민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부패를 감시하는, 부패를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작품 맨 끝에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다소 올드한 드라마 제목에 관한 이야기, 황시목의 감정 배제 이유, 특별히 애착가는 대사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정말 좋았다.
작가들에겐 작품이 생명이고 재산이겠지만 대본집 출판으로 드라마팬이 작가팬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싶으니 앞으로도 이런 좋은 대본집이 자주 출판되면 좋겠다.
이수연 작가. 당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꾸준히 자료 모으고 훌륭한 작품 써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