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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전경린 작가의 작품. 이제 3번째이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최소한의 사랑에 이어 엄마의 집. 전경린의 작품은 여자가 읽기에 가슴 시린 이야기다. 겪지 않았으면 싶은 남편의 외도, 어긋난 사랑,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이 주는 아픔 등으로 흡입력있는 이야기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한동안 힘든 이야기들이다. 엄마의 집. 이 엄마는 또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까하는 겁이 먼저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인연은 반드시 나에게 닿듯이 책을 펼쳐 읽었다.
책을 펼치자 마자 나와 만난 문구는
"If life gives you a lemon, make lemonade"
삶이 너에게 레몬을 준다면 너는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참 말은 쉽다. 삶이 시어빠진 레몬을 주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첫 문구에 나는 콧방귀를 뀌며 책을 넘겼다.
어떤 엄마의 집일까 생각하는 나에게 "나는 다시 엄마의 집을 떠나 학교 기숙사로 들어갔다"라고 1인칭 시점의 문장이 "꿈깨"라고 말해줬다. 뭣이라? 엄마의 집을 설명조차 하지 않고 떠나 버린다니, 아니꼬운 시선으로 나는 주인공 호은이의 뒤를 쫓았다. 그랬더니 마흔 일곱살의 아빠와 아빠의 딸인 승지를 만나게 되었다. 얼떨결에 이혼한 전남편의 아내의 딸을 받아들이는 엄마 노윤진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어정쩡한 동거인의 관계가 형성된 엄마, 승지, 그리고 주말에 가끔씩 들리는 호은이가 사는 집이 엄마의 집이다. 엄마가 사는 집. 따뜻한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사는 것이 가족인지도 모르겠다 싶은 호은이와 엄마 사이에 끼어든 승지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스물 한 살의 호은, 열다섯살의 승지, 마흔 다섯살의 엄마. 그들이 그어놓은 평행선 사이에서 그들을 번갈아쳐다보는 나 자신도 불안했다.
엄마와 아빠가 사랑했었냐는 질문에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의 자를 가지고 들이대는 순간, 사랑은 없단다. 어디에도 없어. 지금이라면, 난 사랑에 억압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꿈꾸지도 않고 기만당하지 않았을거야. 내가 하는게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네 아빠와 헤어지지 않고 세상의 높은 곳과 낮은 곳을 흘러갔을거야. 사랑이든 아니든,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든 혹은 사랑을 지나가버렷든, 사랑이라는 개념 따윈 버리고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믿을거야. 네 아빠와 난, 그것에 실패했어"
라고 말하는 엄마에게서 호은은 아빠에 대한 미움의 가시가 빠져 나가고 아빠를 아빠라는 개념의 감옥에 가두고 그 역할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개념, 부모라는 개념에 맞춰 살아가는 우리들은 진실과 실체보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격에 몸과 정신을 맞추는 작업을 하다 지쳐간다는 것을 이 소설의 인물들이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 책을 덮을 때 다시 한 번 등장하는 영어 문구. 생은 시어빠진 레몬 따위나 줄 뿐이지만, 나는 것을 내던지지 않고 레모네이드를 만들것이다라는 호은이의 말을 나도 조용히 따라 해 본다.
이때까지 읽어왔던 전경린의 "여자"들과는 다른 모습의 엄마, 그리고 딸 호은이. 세상의 개념과는 다른 자신만의 관념으로 철저하게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두 여자의 삶을 마음속으로 응원한다.
헤어지고 만나는 사람들. 그게 바로 삶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