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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평점 :
내가 언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읽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90년대 말이었던 것 같다. 20년이란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의 글. 정말이지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그 뒤로 신영복 교수님께서 쓰신 글은 가능하면 다 사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신영복 교수님의 문장은 어렵기는 하지만 조금 천천히 읽으면서 생각을 하면 참 많은 것을 알려 주는 큰 선물이다. 특히 "처음처럼"을 가까이 놓고 반복해서 읽곤 하는데 살아가는 기본적인 이유, 삶의 목적, 태도를 되살펴 보도록 해 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바로 교수님의 글씨이다. 교수님의 글씨는 안정적이면서도 글씨 스스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인지 현판에 자주 쓰여지기도 한다. 이 책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 가서 그 글씨와의 인연, 건물 이야기, 사람이야기를 모두 들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왜 변방인가?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쓴 글씨들이 대체로 '변방'에 있었다"고... 지역적으로도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또 그 곳의 성격 또한 주류 담론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변방은 또 새로운 창조의 중심이 될 기회를 가지고 있는 땅이다. 그러한 희망을 이야기 해 주시려고 이 책을 내셨다.
이 책에서는 8곳에 쓰여진 글씨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맨 처음 소개 된 곳이 땅끝 마을의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의 도서관 현판이다. "꿈을 담는 도서관"이란 문구가 쓰여져 있는 곳이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또 한 번 고맙다. 글의 첫 시작을 초등학교 도서관 현판으로 시작 해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땅끝. 해남의 작은 분교에서 시작될 창조를 소개하시면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의 마지막 구절을 말씀해 주셨다.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라고 말이다.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가 혁신 학교로 지정되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변방의 진정한 역할을 느끼셨다고 전해주셨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꿈은 가슴에 담는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고 하니 아이들의 마음에 큰 선물을 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소개 된 곳은 강릉에 있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현판이다. 글자 그대로 소개가 되는 곳. 이곳을 설명하면서 허균의 "호민론"도 알려 주셨다. 백성이 바로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허균의 사상, 감동적이다. 그 시대에는 반역자로 죽음을 당하였고, 그 시대의 제도에 좌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허균과 허난설헌이지만 그들의 창조성이 지금의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허난설헌의 좌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남매의 좌절, 저항을 우리는 다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세번째로 소개된 곳은 박달재. 박달과 금봉이와 관련된 아련한 사랑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는 박달재. 그래서 박달재는 비극적 파토스가 남아 있는 서민적인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네번째로 제천의 '벽초 홍명희 문학비'이다. 월북작가로 훌륭한 문학성을 갖추었지만 단지 월북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작품은 금서가 되어야 했던 세월이 있었고, 그 세월을 이기고 각종 보수단체의 질타를 받으면 세워졌었던 문학비.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녹아 있는 임꺽정과 함께 그의 문학의 비주류성이 반짝 빛나는 시절이 오길 기대해 본다.
다섯번째로 오대산 상원사의 문수전 현판. 배불정책에 의해 완전히 소외되었던 불교의 산실. 문수전의 현판은 욕망과 소유의 고해에서 우리들이 깨달아야할 무소유를 다시 한 번 말씀해주셨다.
여섯번째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와 김개남 장군 추모비를 통해 죽음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민초들의 상황을 알려주시고자 하셨다. 어떤 죽음이라 하더라도 거대한 상실임에는 틀림없다고 하시면서...
일곱번째는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서예전에 출품되었던 "서울"이라는 글자. 지금은 서울 시장실에 걸려 있는데, 북한산과 한강을 형상화한 정말 멋진 글씨의 제작 배경 이야기가 참 재미나게 소개되어 있다.
마지막 여덟번째는 내가 유일하게 가 본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이다. 대통령이었지만 주류가 될 수 없었던 변방의 대통령,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글씨이다. 진정한 변방의 글씨가 아닐 수 없다. 지역적, 권력적 변방이기도 하거니와 창조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글씨이다.
이 책은 일종의 방문기이다. 때문에 방문지에 얽힌 다양한 추억도 있고, 실제 사진도 같이 게재되어 있어서 가보지 않은 사람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게으른 독자에게는 최상의 선물이 된다.
신영복 교수님께서 이제 연세도 많으셔서 많은 글을 쓰시지는 못하시지만 그분의 글은 우리에게 가르침이 되고 등대의 불빛이 되는 글들이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답다. 이 책을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 반드시 한 번 읽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