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강. 본명인지 필명인지 모르겠으나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이름. 나는 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 이력을 살피기 위해 책 날개를 살폈다. 나랑 동갑의 여성작가다.

1993년에 "문학과 사회"에 시를 발표했단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었을 무렵. 그녀는 시를 썼구나. 그 무렵에 생각한 40대. 적어도 가야할 길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40대 중반인 지금도 여전히 한 발 앞도 모르겠다. 도서관 한국 소설 코너를 쭉 살펴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한겨레 21에 광고가 되었던 것을 본 인연일까 읽어볼까 하는 의지가 생겼다. 어릴 때는 촌스럽다고 싫어헸던 노랑색의 무늬로 책표지는 그려져있다. 오늘 보니 노랑색이 따뜻하고 세련되게 느껴진다.

이 책은 작가 한강이 2003년부터 쓴 단편 7개를 모아 낸 소설집이다. 난 단편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작가가 말했듯이 "성냥 불꽃" 같기 때문이다. 작가는 먼저 불을 당기고, 그게 꺼질 때까지 온 힘으로 지켜 본다고 했는데, 나는 오히려 눈 앞에서 무서울정도로 확 달아 올랐다가, 금방 꺼지고 마는 단기성 때문에 싫다. 당장은 강렬하나, 오래 기억되지 못하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속에서 섞여서 결국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집은 그렇지 않다.

한 편 한 편에 내 마음이 똑같이 타 올랐다.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던 언니를 병으로 잃은 작가인 당신,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한 아들의 엄마, 이혼하고 인디 가수로 살아가는 인아를 사랑하고 닮고 싶은 남자인 나, 영혼을 공유했던 선배 언니를 잃은 나,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은 왼손을 가진 그,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잃고 사는 나, 교통사고로 왼손이 뭉게진 화가인 나. 단편 7편의 주인공 상처에 진심으로 마음이 쓰렸다. 나의 상처인냥, 보듬어 주고 싶도록 만들었다. 작가 한강은 우리를 극한으로 몰고 갔다가 조금씩 숨통을 틔워주며 희망을 가지라고 귓가에 소근거렸다. 앞발리 잘려나간 도마뱀이 다시 새로운 발을 만들어내듯이 빠듯하고 메마른 현재의 삶에서 따뜻한 노랑색을 찾으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하늘을 보던 어느 순간, 영원과 무한 같은 것을 생각이나 느낌이 아닌 몸으로 알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그것들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내가 말하자 당신은 심상하게 대답했지요.

그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그리고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가에 가득 잔주름을 만들며 웃엇지요" [p214, 파란 돌 중]

노랑색이 힐링이 되었다. 이 책 제목도 그렇고, 책 표지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노랑색으로 이미지화 된 희망이랄까, 용기랄까 그런 것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에 빙의되면서 느껴졌다.

작가가 시를 썼던 까닭일까? 7편의 글들이 모두 운률이 느껴진다. 입밖으로 소리 내어 읽어 보니 노란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서 행복해졌다.

도서관에서 빌려 봤지만 한 권 소장한 뒤에 힘들 때 조금씩 꺼내 소리내어 나즈막하게 읽어보고 싶다. 얼른 주문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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