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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하버드대 종신교수 석지영의 예술.인생.법
석지영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13년 1월
평점 :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가 된 한국계 미국인, 석지영 교수의 자서전이 나왔다. 언젠가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도 들었고, 한국에서 특강이 이루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한국계 미국인이 하버드 대학만 나와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버드 대학의 법대의 교수, 그것도 종신교수라고 하니 그녀의 삶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좀 더 나를 채찍질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
책을 펴니 프롤로그가 펼쳐진다. 많은 자서전을 읽어봤지만 "사실의 열거라는 측면에서 불완전하다"고 자신의 책을 평한 경우는 처음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어린아이가 받은 인상에 가깝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인물을 열거할 때 개인의 사생활을 위해 대폭 생략했다는 점에서, 인생 전체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완전하다고 말했다. 프롤로그에서 읽을 수 있는 객관성이 내게는 장점으로 와 닿았다.
석지영 교수는 서울에서 출생했으나 집안의 이민 결정으로 초등학교 1학년 도중에 미국으로 떠난다.
모국어가 만들어 주는 이해의 틀을 적용할 수 없었던 만 여섯살짜리 꼬마는 어둠의 세계를 홀로 견뎌내었다고 한다. 동생의 유치원 선생님은 동생에게 청각장애가 있다고 주장할 만큼 주위 세계에 반응할 수 없는 어려움. 짐작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녀의 부모는 잔인하게도 처음 정착했던 뉴욕을 떠나 오하이오주로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주를 감행했다. 어른도 물론 힘들었겠지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말 못할 고통이었을텐데 참 잘도 견뎠다고 토닥여주고 싶었다. 밤마다 겁에 질려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고,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이 생길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녀를 잡아 준 것은 학교 선생님과 책이었다고 한다. 의욕없이 늘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에게 담임 선생님은 더 잘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었으며, 책은 포근한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말이 필요없는 활동, 예술 활동을 하며 삶의 의미를 찾던 작은 꼬마가 발레에 푹 빠졌다. 하지만 한국인 부모님들은 발레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며 취미생활로만 그칠 것을 주문한다. 발레를 포기한 꼬마는 고등학교 내내 수업 시간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시를 읽으며 삶을 유지했다. 그때도 학교 선생님들은 그녀의 명민함을 알고 더 잘 할 수 있다고 북돋워 주었다고 한다. 예술과 문학을 사랑한 그녀의 심지를 알아 준 예일대 덕분에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한 덕분에 예일대 졸업 후 옥스포드에서 문학 박사를 땄다. 우리들이 놀랄 것은 여기까지의 삶이 아니라 여기서부터의 삶이다. 옥스포드 문학 박사라면 충분히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을텐데 그녀는 생각했다. "문학에서 쓰기 작업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법"이라는 카테고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때까지 해 온 것을 포기할 때 안타깝고 아쉽기도 할 법한데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새로운 분야 법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날 하버드 법대 종신교수가 될 수 있었다.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을 이민자 신분의 어려움을 말없이 잘 견뎌내었으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라는 인생의 물음에 그녀는 "좋아는 것"이라 담담히 대답하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장래 희망이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안정된 위치를 찾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책이었다.
딸의 머리맡에 살짝 올려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