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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책표지의 광고 문구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구절 비슷한, 애정을 갈구하는 연애 문구중의 하나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김연수 작가가 진한 연애소설을 내 놓았나? 올해 다작하고 있는데 가벼운 연애를 내게 말하려나? 라는 생각으로 책을 구입했다. 물론 김연수 작가가 아랍어로 제목을 짓든, 외계어로 제목을 짓든 김연수 작가가 지은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입했겠지만.....
여고생의 뒷머리, 요즘은 볼 수 없는 머리 스타일이다.
교복입은 고등학생, 나도 정말 저런 머리가 하고 싶었는데, 두발 자유화가 되면서 교복은 입되 머리는 자유롭게 길렀던 나로서는 참 그리워하는 머리 스타일의 여자 뒷모습이 책 표지에 올려져있다. 여고생의 사랑 이야기일거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책은 생후 6개월에 미국에 입양되었던 카밀라가 26세가 되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대한민국의 진남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김연수 작가의 책은 시작부터 신경 바짝 쓰고 읽어야 하는데 이번 소설은 술술 잘 넘어간다. 하하하. 드디어 이렇게 읽기 쉬운 연애소설도 써 주시나라며 즐겁게 누워서 읽고 있는데, 따악~~. 김연수 작가. 나에게 어퍼컷을 날렸다.
말도 안되는 출생의 비밀이라니....
요즘 하드코어식 추리소설도 많은데 김연수 작가의 소설까지 나를 힘들게 하지 않겠지라는 믿음으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김연수 작가는 어퍼컷을 때린 뒤, 그 뒷수습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카밀라에게 희재라는 이름을 선물로 주고, 그녀의 어린 엄마 정지은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어린 엄마가 지은 시도 읽어준다. 김연수 작가가 이끄는 대로 나는 정지은의 삶 속으로 빠져들고 급기야 희재를 위로하게 된다. 엄마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는 날개를 달고 희망을 향해 훨훨 날아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버지들끼리 같은 공장을 다니며 동료로서 목숨까지 희생하는 사이이지만 그 딸들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아버지는 사주, 한 아버지는 노동자로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사이지만 그 아들과 딸은 심연을 넘나들 수 있는 날개를 가지는 상황이라니, 또 한 번 아이러니를 느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정지은이 희재에게 해 준 말. 살아있다면 감동으로 다가왔을 말. 그 말에서 엄마는 또 그렇게 끈질기게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김연수 작가가 작가의 말 끝에
"부디 내가 이 소설에서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당신이 읽을 수 있기를'
이라고 말했는데, 이 소설에서 쓰지 않았던 가이드 교수의 삶, 정지은의 친구들의 삶을 아직 상상할 수 없으니 나는 이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걸까?
다음에 조용하면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