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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어느 한 순간도 지루했던 순간이 없었고, 주류에 포함되지 않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올바로 성장하는 과정을 엄청난 유머로 그려주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재미나게 읽고 감동 받았든지 박민규의 책은 무조건 본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로 인연 닿은 책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인데 400페이지가 넘는 제법 두꺼운 책이다.
표지 이미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이라는데 묘하게 한 인물만 하이라이트 되어 있어서 원본도 그렇나 싶어 검색을 해 보니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이 인물을 강조한 것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기형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하이라트된 이유가 뭘까? 그리고 이 그림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라벨의 음악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궁금하여 펼쳤다.
'역시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
아~ 사랑 이야기인가? 언제 읽어도 떨림이 있는 이야기?
그렇다. 사랑, 그것도 평생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 첫사랑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무슨 판타지인가. 못난 여자와 잘난 남자와의 사랑이야기.
늦게서야 배우로 주목받던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나면서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아 버린 남자, 못났다는 이유만으로 왕따 당하고, 놀림 당하고,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여자, 정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부자집의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남자, 이렇게 세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좁혀가는 이야기이다. 남녀 사이에선 사랑이 싹트고 동성의 남성에게선 형제애 같은 우정이 생겨난다. 이 소설의 제목과 표지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주인공들이 관계를 형성해 나갈 때 음악과 미술 작품을 등장시킨다. 그 음악들이 나의 성장기를 지배하던 음악들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며 그 선율에 따라 흔들리는 주인공들의 마음을 나도 느낄 수가 있었다. 신기한 음악의 힘을 작가가 잘 이용하고 있었다.
남녀 관계를 밀고 당기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지루하게 묘사하지 않고 좀 더 깊숙히 발을 들여 놓고 사람의 심리로서 접근하는 방법이 참 좋았다. 참 이쁜 첫사랑 이야기이구나 하고 결론을 내고 작가의 말이나 읽어봐야겠다고 뒷부분을 향해 달려갈 때 내 앞에 턱하니 나타난 것은 "Writer's Cut".
어, 이거 뭐지? 박민규 작가. 그래 흔하게 마무리 하지 않는구나. 그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또 다른 이야기... 이건 작가가 독자에게 내어놓은 선물일까? 흔히들 말하는 열린 결말일 수도 있겠다.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오늘 아침에 시작해서 오후에 끝을 냈다. 엄청난 흡입력이다. 게다가 문장이 찰지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재미있다. 문단과 문단을 연결하는 방법이 특이하다. 문단 사이에 문장이 걸쳐지는, 문장을 읽으면서 의도적으로 쉬어가야 하는 편집이다. 인간 관계도 그런 게 아닐까? 한 문단에서 다음 문단에 걸쳐지듯이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걸쳐지는 것이 사람 사이의 끊을 수 없는 끈이리라.
어떤 선택을 해도 독자를 즐겁게 해 주는 박민규 작가.
다음은 또 어떤 책이 기다릴까. 은근 기대를 만드는 당신에게 "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