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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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내집"은 아파트다. 아주 어릴 적 마당 딸린 집에 전세로 산 적이 있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아침마다 마당에 떨어진 신문을 주워 올리는 장면, 낙엽을 긁어 모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 커피를 마시며 잔디를 밟는 장면 등을 생각하면 마당 있는 집이 좋기도 하겠지만, 집 관리를 해 나가야 하는 주부 입장에서 아파트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아직도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집이라는 것이 재산의 일부로 여겨져 아파트에 살아야만 손해보는 삶은 아니라는 엉터리 생각도 한 몫하기때문에 당분간 아파트에서 삶을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답답한 공간의 삶은 다분히 한시적이다. 더이상 도시에 머물 이유가 없어지는 시기가 되면 마당 넓은 집에 이사를 가서 자연속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집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나의 레이더 망에 걸린 책이 바로 "철학으로 읽는 옛집"이다. 이 책을 하와이 여행을 가서 와이키키 해변가에서 읽었는데, 와이키키의 짙푸른 바다라는 자연속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옛집 모습이 아이러니 하지만 참 잘 어울렸다.

 

  이 책의 저자 함성호는 시인이며 건축가라고 한다. 건축 한가지만 해도 어려운 일인데, 시도 쓰고, 조선 성리학자들의 철학까지 두루 섭렵했다고 하니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 내게 왔구나 싶어 고마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 책에는 회재 이언적, 남명 조식, 퇴계 이황, 고산 윤선도, 다산 정약용,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명재 윤증 등 이름만 들어도 서릿발 느껴지는 대단한 성리학자들의 집이 등장한다. 이 중에서 내가 가 본 적이 있는 장소는 달랑 2군데 밖에 없는데,아무런 사전 지식을 갖지 않고 만났던 장소들이어서 나의 느낌도 하찮을 수 밖에 없었다. 지리산의 산청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들렀던 산천재, 기대에 미치지 못한 규모, 허술한 관리 등으로 안타까움만 느꼈었고, 해남에 갔다가 윤선도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 찾아 갔던 보길도의 세연정에서는 사람이 만든 자연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고  느끼고 왔다.

 

  이 정도의 사전 지식으로 이 책을 펼쳤는데,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독락당의 설명을 읽는 순간부터 "옛집"은 경이로움으로 다가 왔다. 이언적이 마흔의 나이에 김안로 일파의 탄핵을 받고 고향에 내려와 지었다는 독락당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자연속에서 삭이고자 하는 목적이 나타난다. 숲과 바위와 물이 어울어져 집이 되는, 자연속에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 독락당에서 생활하면 사람도 곧,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락당과는 다소 대조되는 향단을 보면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다. 이언적이 정계로 다시 돌아가 경상감사로서 직무도 보고,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은 향단은 전문가들이 보기에 다소 기묘한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건축에서는 보기 힘들게 조각하듯 만들어진 집이라고 하는데, 이는 터와의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해 '用'자 형상을 가상하고 하나씩 만들어 갔기때문이라고 한다. 자연과 어울리도록 지어진 독락당, 자연을 이용한 향단. 꼭 한 번 가서 봐야겠다.

 

  나의 무지로 인해 그냥 지나쳤던, 산천재. 집에 들어서면 지리산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건물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있는 이 곳은 퇴계 비문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명종을 고아로, 문정왕후를 과부로 표현했던 조식 선생의 집이다. 들어서자 마자 매화가 반기는 이곳은 혼돈의 시대에 처사로 불리고자 해던 조식 선생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있다고 한다. 이것을 알고 산천재를 봤었더라면 조식 선새을 좀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다.

 

  가까운 경남이지만 가보지 못했던 도산 서원에 대한 퇴계선생의 소박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아주 작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시대 성리학의 대부인 퇴계 선생과 그 제자들의 끊임없는 논쟁의 소리가 들려올까? 도산 서원의 매화 향기를 맡아 보고 싶다.

 

  무지한 나에게도 사람이 만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던 고산 윤선도의 집.고산,그는 왕세자의 스승이었으며, 바다를 주름잡던 의병장이었다. 병자호란때 인조가 치욕의 강화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제주로 가다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가게 되고, 아름다운 보길도의 풍경을 보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풍수인으로서 윤선도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되었는데, 윤선도가 효종의 능 후보지로 정해 주었던 곳이 훗날 사도세자의 능이 되었다고 한다.

 

  몇 번씩이나 가 봐야겠다고 다짐한 다산초당에 대한 소개는 흥분의 마음으로 한달음에 읽어버렸다. 다산의 외척인 윤단이 초옥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을 다산에게 내어 주어 다산초당이 되었다고 하는데, 방대한 저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역사적으로 남긴 그의 여유와 끈기, 그리고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그곳에 얼른 발을 딛어봐야겠다.

 

 사계 김장생이 79세에  금강 포구 강경에 지었다는 임이정. 장소의 선택이 앞의 성리학자들과 달랐던 김장생의 세련됨도 느껴보고 싶고, 그의 제자였던 송시열의 건축 작품들도 보고 싶다.송시열과 치열하게 논쟁을 했지만, 백성들에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였던 검소한 윤증의 고택도 반드시 봐야 된다는 강박감도 생겼다.

 

  이 책에서 소개한 성리학자들의 고택을 읽으면서 풍수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당대의 복을 구하기 위해 풍수를 살핀다고 나는 생각해왔는데 진정한 풍수는 말 그대로 바람과 물을 얻을 수 있는,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자연을 배제한 집은 의미가 없고, 자연속에 어울려야 아름다운 집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다. 집이라는 것이 인간의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집이 지어진 뒷배경을 알려면 자연히 역사를 알아야 하고, 철학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함성호 시인이 일러준 길을 따라 가다가 자칫하면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다시 돌아와서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다. 2주 정도 시간을 두고 정독을 했는데, 덕분에 우리 나라 역사도 많이 알게 되었고, 집이 지니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당분간 나의 여행지는 이 책에 나오는 고택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많은 것을 알게되고 깨닫게 된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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