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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의 인생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나라 요시토모 그림 / 민음사 / 2009년 12월
평점 :
나에게 있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클라리넷과 하프로 연주된 음악같다. 교향악과 같은 큰 울림은 없지만 잔잔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시모토 바나나를 치유의 작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도서관의 일본 문학 서가에 꽂혀 있는 아주 얇은 책, 데이지의 인생.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지만 쉽게 골라 왔던 이유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라는 이유 단 하나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문득 꿈에 나타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어! 맞아, 그 친구랑 나는 무척 친했지. 그런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느닷없이 꿈에 나타났을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데이지도 11살에 헤어진 친구 달리아의 꿈을 해마다 꾸어 왔다. 데이지의 어린 시절의 친구였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외롭고 슬픈 데이지를 위로해 주었던 친구였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는 안 계셨고, 엄마랑 살았던 데이지는 어느 장맛비가 내리는 날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외롭고 힘든 저녁이면 작은 소리로 피리를 불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던 친구가 달리아였다.
그 친구의 엄마가 브라질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헤어졌고 드문 드문 주고 받던 연락도 끊어지고 1년에 한 차례씩 달리아의 꿈을 꾸면서 막연히 그리움을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날 달리아의 꿈을 한동안 꾸지 않았다고 생각되던 날, 달리아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받게 되었다.
엄마의 죽음을 이미 보았던 데이지였기 때문이었을까? 너무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였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불쌍하지 않다. 고독하거나 안쓰러운 죽음이 아니다. 조금 어이없기는 하지만, 모두 겪는 일이니까 특별하지도 않다. 때가 오면 모두, 고인 물을 빼내고, 튜브를 연결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의 생명을 잃어간다. 달리아에게 그런 시간이 조금 빨리 왔을 뿐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도, 갑작스레 닥쳐와 놀랐어도, 그때가 오면 몸이 수긍한다."
나는 아직 부모님이나 친한 사람과 영원히 작별한 경험이 없는 터라 데이지의 마음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든 것이지만 누군가 죽어가면서 나를 생각했다는 아련한 슬픔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리라는 것은 알 수 있다.
힘든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마저 잃었지만 그 슬픔을 마음에 묻어 두고 한 발 한 발 세상을 향해 내딛는 용감한 데이지의 인생을 꼭 기억해 줘야겠다. 그의 인생 상자가 외롭지 않도록...........
요시모토 바나나와 떨어질 수 없는 나라 요시토모의 삽화는 오늘도 역시나 멋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