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이 해피엔딩-김연수, 김중혁

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김연수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 나와 동갑인 작가가 한 둘이겠냐만은 김연수 작가가 그리는 세계가 낯설지 않고, 그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서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정기구독 하고 있는 영화 잡지에 그의 글이 실렸을때도 참 기뻤다. 소설에, 에세이에, 번역서까지 그의 작품을 찾아 읽으려면 얼마든지 있지만, 그의 친한 친구와 주고 받는 또 다른 세계를 알 수 있어서 매주 월요일 잡지가 배달되는 날을 무척 기다렸다.  덕분에 김중혁이라는 행복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악기들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을 찾아 읽었는데, 무척이나 감성적이고 예쁜 소설이었다.

연재가 끝나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이렇게 책으로 그 에세이들이 묶여 나왔다. 어찌 안 읽고 넘어갈 수 있으랴.

 

  나도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와 교환 일기를 썼던 적이 있다. 친구와 내가 돌아가면서 일기를 쓰는 것이었는데, 친구에게 직접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한다든지, 나의 사소한 일상을 구구절절 전하면서 항상 친구가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가졌던 것이 참 좋았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나는 이 아이와는 정말 친한 친구이다'라는 것을 은연중에 광고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춘기 소녀들의 교환일기와는 상당히 다른 포맷이다.

우선은 영화가 중심에 있다. 영화 잡지에 실렸던 글이었기때문에 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들, 사상, 감정들이 우정이라는 끈으로 이쁘게 포장되어있다.

작년에 이 글들을 잡지에서 읽을 땐, 내가 본 영화와 김연수, 내가 본 영화와 김중혁만 있었다.

일주일만에 배달되었던 글이라 앞 글의 여흥이 남아 있지 않아서 대꾸 형식으로 쓰여진다고 해도 그것이 크게 와 닿질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책으로 읽으니, 영화는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김연수와 김중혁의 대꾸가 크게 와 닿았다. 남자들의 우정은 그런 것일까?

언듯 보기엔 맑은 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둘 사이에 뭔가가 가라앉아 있어서 조금만 흔들면 진한 액체가 된다.

두 작가 사이의 음악, 영화, 문학 등이 얼마나 진하게 얽혀있는지 끝도 없이 솟아나는 샘물같다.

서로에 대해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짖궂게 놀리기는 중에 우정이 묻어나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도드라지기도 하며, 한국 정세에 한탄하기도 한다.

영화라는 매개체로 우정과 문학, 음악, 감성이 묻어나는 재미나는 대꾸 에세이를 읽는 동안 어찌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깔깔거리며 읽을 수 있으니, 영화가 궁금하신 분, 우정이 궁금하신 분, 음악이 궁금하신 분, 꼭 한 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