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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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이루세요"
신경숙 작가가 나의 책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써 준 말이다.

신경숙 작가가 온라인 서점에  연재했던 책을 발간했고, 예약을 하면 싸인본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얼른 예약하고 싸인본을 받았다. 수많은 독자에게 써 준 말이겠지만 꿈을 이루라는 말에서 그녀의 진심을 읽었다면 내 감정의 오버일까? 싸인본에서 느낄 수 있는 그녀의 간절함이 책 속에서 고스란히 묻어났으니 꿈과 사랑과 희망을 찾는 젊은이들을 보며 "제발, 꿈을 이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등학교때 윤리시간이었을 것이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기"라고 한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며 "몹시 빠르게 부는 바람과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과 같이 감정이 폭발하거나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하셨다.
 모의고사니 중간고사니 이름만 바꿔가며 매주 우리를 괴롭히는 시험때문에 딴 생각할 틈이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이라 "이런 게 무슨 질풍노도일까?"라고 되물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도 제도에 순응했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부터 진정한 질풍노도가 시작되었다. 대학 교정까지 백골단이 쫓아왔고, 백골단의 방패에 맞아 선배가 쓰러지면서, 모든 학사일정은 엉망이 되었고, 우리는 늘 같이 울다가 웃다가 떠들다가 침묵했다가 노래 불렀다가 구호를 외쳤다가 했다.  지나치게 조용했던 나의 일상을 뒤흔드는 사건속에서 나는 진정한 질풍노도를 느끼면서 대학생활을 시작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 정윤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 이명서, 윤미루, 단은 불안한 젊음들이었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 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이 실제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P 20)

8년 전의 기억, 기억속에서 재가공된 것인지, 아니면 날 것 그대로의 기억인지 모르지만 시계바늘은 8년 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엄마를 병으로 잃고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정윤은 학교를 1년 휴학한 뒤에 복학하여 이명서, 윤미루를 윤교수 수업시간에 만난다.  언니를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제대로 서지 못했던 윤미루를 엄마를 잃은 정윤은 바라본다.
같은 상처를 가진 같은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면 느낀다.
어릴 적 친구인 미루의 상실감을 알아주는 정윤에게서 고마움과 사랑이란 감정을 갖게 된 명서는 정윤을 만나는 날에 "오늘을 잊지 말자"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내가 그쪽으로 갈게"라고 말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분신과 같았던 친구들을 잃게 됨으로써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인생을 채워나갈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스승인 윤교수는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다만...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라고 말했지만, 사랑의 슬픔, 상실의 허무함을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은 이별하게 되었다.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고 했던가? 8년만에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윤교수가 죽어가면서 제자 한 명 한 명의 손바닥에 남긴 문장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에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청춘을 벗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노교수의 따뜻한 마음과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유언.
그 따뜻함 덕분에  명서와 윤이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럴 수 있지"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나도, 사랑의 기쁨, 슬픔, 상실, 허무감을 느끼고 끊임없이 "왜?" 라는 질문을 던지며 도전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 불안정이 정서적 불안정으로 이어졌던 우리의 청춘들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은 신경숙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겠지만, 7080세대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작은, 아니 큰 소망이 생겼다. 윤교수처럼 외롭지만 지혜로운 스승이 되어 흔들리는 젊은이들을 잡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띠지의 그림이 정말 좋다.
어떤 그림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그림쇼라는 화가의 "와피데일"이라는 작품이란다.
달빛 화가라고 불리는 그림쇼답게 곧 밝아올 새벽을 상징하는 노란 달빛,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으니 이제 밝은 아침이 오리라는 희망이 느껴지는 띠지의 그림은 신경숙 작가가 젊은이들에게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면 이처럼 아름다운 새벽, 아침이 곧 옵니다. 희망을 가지세요. 꿈을 이루세요"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상실감을 느끼더라도 영혼을 훼손시키지 말라고, 그러면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이 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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