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이들 없는 세상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늘 반가로 개사 해서 쓰는 동요가 있다. '아이들은'이라는 창작동요인데 노래의 분위기가 밝고 명랑하고 노래의 가사가 참 의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도 제목 "아이들 없는 세상"이 "아이들은"이란 노래의 가사와 겹치는 까닭이다.
이 노래의 가사중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 아이들이 잠시 없다면 낮도 밤인것을 노래소리 들리지 않는 것을..."이라는 부분이다.
어린이라는 말의 어원이 "어린해"라는 것에 힌트를 얻어 만든 가사가 아닐까 싶다.
어린해가 집집마다 있고 그 해가 있어서 세상이 밝고 따뜻한데 그 해가 사라지면 낮도 밤이 될 수 밖에 없고, 세상을 밝게 하는 노래소리조차 사라질 것이라는 노래 가사를 생각하며 책을 펼쳤다.
우리나라 창작 동화 "영모가 사라졌다"처럼 사라진 아이를 찾는 긴 장편 소설인줄 알았는데 짧은 이야기 19개를 묶어 놓은 이야기집이다. 짧은 이야기들이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잠시 실망하고 책을 읽어내려갔는데, 이야기의 전개방식, 구성 내용들이 참 솔직하면서도 창의적이고 기발하다. 그렇다고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은 절대 아니다.
우리가 지금도 겪고 있고, 지금도 이야기 하고 있으며 고민하고 있는 현실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있어 현실감 또한 만만찮게 느낄 수 있는 참 특이한 이야기들이다.
"아빠 삶이란게 뭐예요?" 란 이야기가 참 좋았다.
아빠 삶이란게 뭐예요?
삶이란 아름다운 모험이고
속임수 쓰지 않는 손재주같은 거지
반짝반짝 빛나며 자라는 상상이자
뿌리 깊은 오렌지나무이고
늘 우리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키는
움직이지 않아도 떠나는 여행 같은 거지
만약 내 딸이 삶이란게 뭐예요? 라고 물었어도 나는 이렇게 답해줄 수 있었을까?
나중에 알게 된다고 회피하지는 않았을까? 뭐 그런 질문을 해? 숙제는 다 했니? 하고 면박을 주지는 않았을까? 아이들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을 이해하고 있을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친구도 엄마도 아빠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뤼까가 선생님이 준 책으로 들어가버린다는 "책속으로 들어가 버린 소년"이란 이야기도 가슴이 찡하며, "그거 아니? 누군가가 우리를 떠올리는 힘으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자신의 상황을 조곤조곤 이야기는 하는 바그다드 소년의 "우리 이웃"이란 이야기도 감동적었다.
나는 이 책의 저자인 필립 크로델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데 소설가이며 극작가이고 영화감독으로도 데뷔한 프랑스의 지성이라고 한다. 여러 책들 중에 어른들을 위한 우화소설이 있는데 이 책도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작가는 이 책을 자신의 꼬마 공주님과 언젠가는 어른이 될 아이들과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아이들이 흔히 느끼는 불만, 불안, 의문, 사랑, 가족, 이웃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고 사는 어른들은 이 책을 읽어야한다.
그래야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구정물 뒤집어 썼던 나의 영혼이 깨끗하게 샤워를 한 기분이다.
비록 이 깨끗함은 오래가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