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히가시노 게이고

붉은 손가락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붉은 손가락은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의 거장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그는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비밀", "편지"등의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나도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손닿는 대로 읽는 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의 해결을 위해 여러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저울질 하는 추리극은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말초적이기 마련인데, 이 두 사람의 작품은 미스터리라 분류되는데도  읽고나면 나는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책을 읽고 나서도 한참을 "인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붉은 손가락은 고령화 시대, 가족파괴시대라 특징 지을 수 있는 현대에 일어남직한 사건을 담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모르고, 자식은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시대. 자식을 낳았으되, 올바르게 교육시키지 않으며, 그저 좋은 성적만 내면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학력우선시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민이 잘 녹아있다.

  붉은 손가락에서는 2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은닉하는 한 가족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형사 가족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살인을 한 가족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너무 평범해서 일상적인 감정의 변화조차 없어 보이던 가족에게 큰 위기가 닥쳤다.  큰 일났다는 부인의 전화에 얼른 집으로 돌아와 보니 중학생 아들이 살인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 일생의 가장 큰 위기에 닥쳤지만,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서야 알게 된다. 평상시 아들과 아무런 소통이 없었음을....아들이 초등학교 내내 따돌림을 당해 학교가기 싫어했으며, 중학교 가서도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인을 했으니 당연히 경찰에 고발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내의 질책에 못 이겨 사체를 처리하고 아들이 범인이라는 것을 숨기려 한다. 아들이 평생 살인자의 낙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거라 생각하면 어느 부모가 담담할 수 있으랴만은 숨기려 한다고 해서 숨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눈 먼 부모는 알지 못한다. 내가 감옥에 대신 가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한 채 아들, 부모는 작당을 한다.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어머니가 딴 남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버리고 떠나버린 가족,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어머니, 아내가 버리고 간 가족의 흔적속에서 억지로 살아가는 형사 "가가"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오늘 내일 오락가락 하고 있음에도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으며 냉정하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만들고 만다. 나로서는 처음으로 만나는 "가가"형사인데,  이렇게 몰인정하고 인간성이 나쁜 가가형사를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에게는 지나치게 차가운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상실된 애정을 찾아 준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인간성에 바탕을 두고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가가형사의 모습이 정말 대단했다.  한 장 한 장 넘거가면서 내가 생각한 대로 사건이 풀려간다고 은근 뻐근해 하던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숨겨 놓은 반전에 넋을 놓았다. 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과 부모. 서로 맘이 달라서 싸우고 다툴 수는 있으나 결코 등을 돌릴 수 없는 관계다. 가까이에 있는 자식, 부모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주고 받으며 사회의 안정적인 기초를 형성하도록 해야한다. 행복한 가정없이는 행복한 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는 기본적 원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멋진 "사회"미스터리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