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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굉장히 오래 전의 일이다.
새해 맞이 TV프로그램에서 탈랜트들에게 새해 소원을 물어 보고 있었다. 다들 고만 고만한 소원을 얘기 하는데 한 젊은 남자 탈트에게 마이크가 넘어가자 그는 서슴없이 "새해 소원은 우리나라의 통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젊은 남자가 "차인표"였다. 나는 그때 "어! 저 사람, 정말 특이한데."라며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가 출연한 TV 드라마, 영화는 보지도 않으면서 그의 행보에 관한 소식은 내 귀에 잘 들렸다. 자신의 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점, 007 시리즈에 한국 배우로서 처음으로 캐스팅 되었으나 북한이 세계의 악인것처럼 지나치게 왜곡되어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부한 점, 세계 곳곳에 불쌍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좋은 일은 많이 한다는 점등이 바로 그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는 정직한 배우, 바람직한 아버지, 정 많은 남편등 그에게 붙는 수식어가 한 두가지가 아닌데, 그가 또 소설도 썼다고 한다. 그냥 가볍게 그의 평상시 생각을 밝힌 "에세이"정도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소설이라니, 차인표씨에게도 "지나친 욕심"이라는 것이 있구나 라며 무시를 했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평이 참 좋았다. 배우 차인표가 아니라 작가 차인표라고 불러 줄 만하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사람들이 호칭을 바꿔 부를까 싶었다.
"잘가요 언덕"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이별을 하던 작은 언덕 이름이다.
길 떠나는 사람이 억새풀에 가려서 안 보이게 될 때까지 호랑이 마을 사람들을 이 언덕 위에 서서 '잘가요, 잘 가세요"를 외치며 작별인사를 해 왔답니다. 그러면 떠나는 사람은 뒤돌아보며 "꼭 돌아올게요. 우리 다시 만나요"라고 답례를 했지요.(p12)
회자정리라지만 이별이 어디 쉬운가? 이 작은 언덕에서 수많은 이별과 만남을 보아온 물찬제비는 오늘도 새로운 만남을 보게 된다. 호랑이를 잡는 황포수와 아들 용이와 마을 촌장님의 손녀 순이와 일본군 장교 가즈오의 만남이다.
엄마 없이 자랐지만 순이는 엄마별의 존재로 따스함을 느끼며 살고, 용이는 엄마와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백호를 잡아야겠다는 마음 밖에 없었다. 그런 용이의 허전한 마음을 조금씩 순이가 채워주었다. 사람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되던 차에 용이의 작은 실수로 마을을 떠나야했고 원하지 않은 긴 이별을 하게 되었다. 일본인 장교 가즈오는 군인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조선에 오게 되지만 계속되는 전쟁으로 지쳐만가고 멀리 호랑이 마을까지 임시 배속되어 자신의 손으로 인구조사를 하여 많은 조선 처녀들을 일본으로 보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갈등을 하게 되는 가즈오의 모습이 가즈오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형식으로 나타나 있어 그것을 읽는 독자는 그의 인간적인 고민을 같이 경험하게 된다.
신인 작가 답지 않은 내공을 보이며 독자들을 한 순간에 몰입시키는 차인표라는 작가가 정신대 훈이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10년에 걸쳐 고치고 또 고친 작품이라고 한다. 우선 이 소설이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쉽게 읽힌 다는 점이다. 어른, 아이 상관없이 이 책을 펼친 사람은 누구든 잘가요 언덕이 이끄는 마음 따뜻한 세상으로 인도된다는 점이다. 두번째 장점은 마음에 큰 감동이 온다는 점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가르치지 않고, 나쁘다고 하여 벌을 내리지도 않으며 곱고 고운 마음이 흘러 오늘날에 도달하여 큰 강물이 된다는 역사를 조용히 알려주여 가슴에 큰 감동을 뿌린다는 점이다. 재미있긴 쉬워도 감동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작가 차인표가 남긴 첫 번째 소설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금도 지구상의 많은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차인표라는 배우, 작가로서 다음 작품이 퍽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