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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이 되는 딸 둘이 있다. 평상시는 잘 모르겠는데, 목욕탕에 데려갈 때면 둘 중 하나가 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둘을 데려가 때를 밀다보면 현기증이 일어날만큼 지친다. 남편이 한 명쯤 책임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높은 습도, 아픔 등으로 몸을 베베꼬며 때 밀기를 거부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내가 알고 있는 여러이야기를 짜집기하여 이야기를 지어낸다. 내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때미는 순간의 아픔이 잦아드는지 '그래서?'를 연발한다. 무사히 때를 벗기고 나면 이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자주 자주 해 줘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나의 이야기 만들기 능력은 늘 바닥을 헤매기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동화책도 읽어보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외워두려 노력하는데, 가끔은 나에게도 이야기가 술술 나오는 이야기 주머니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술술 잘 지어내는 엄마가 있다. 바로 이 책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의 주인공 엄마이다. 이혼 경력이 있으며 작가인 엄마는 잘 때마다 딸에게 이야기를 지어 들려준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딸 사키의 반응에 따라 즐겁게 이야기를 지어준다.
"오늘 이야기에는 누가 나올까요?"
"으음...곰군"
"맞았어. 어떻게 알았니? 그럼 그 곰군은 어떤 곰일까요? 착한 곰일까?"
"사나운 곰" (P 14)
시간 되면 방으로 몰아 넣듯이 들어가게 하고 "시끄러운 소리 나면 엄마가 다시 온다!!' 라고 엄포 놓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참말로 부끄러워진다.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작문시간에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내고 선생님 칭찬을 받는 사키는 설레이는 마음을 느끼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다. 딸의 알림장에 딸의 짝, 류노스케가 확인 사인으로 그림을 그려놓자, 엄마는 알림장을 확인하면서 그 그림에 댓글을 달아주면서 딸의 짝과도 교류한다.
외할아버지께서 부른 노래를 딸에게도 들려주고, 고등어 조림을 하면서 "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고등어 조림이 지나가네요"라는 노래가 딸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엄마다.
그런 엄마도 가끔씩 딸의 행동을 어른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딸아이가 어릴 적 태풍이 오는 날, 수돗물을 틀어놓았는데 그 행동이 강물이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 생각하지 못한 엄마는 야단만 쳤겠지?
뒤늦게야 행동의 의미를 알게 된 엄마는
'아이들이 하는 일엔 다 나름의 논리가 있구나. 사키야, 엄마는 널 사랑해. 하지만 네 생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일이 앞으로도 종종 있을거야. 네가 엄마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거구. ...그런 법이거든, 좋든 싫든'(p98)
라고 독백한다.
이 구절을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딸 아이를 야단칠 때 딸 아이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묻지 않고 야단 친 적이 없었는지, 그랬다면 아이가 혼자 힘들어하지 않았는지하고 되짚어 보는데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그 외에도 소소하지만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참 많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쓴 사람은 장르 문학을 하는 남자 작가라고 한다. 엄마들의 마음, 엄마와 딸아이의 관계를 어쩜 그렇게 잘 묘사했는지, 작가 기타무라 가오루의 관찰력에 감탄했다. 일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번역가 오나리 유코가 제일 동포 3세로서 양국의 문화, 관습, 언어에 능통했던 까닭이었다.
웬만한 육아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이 소설, 제목까지 사랑스런 이 소설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