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잉글리시 페이션트. 영국인 환자라고 번역하니 우습다면서 본 영화 제목이다.
해서는 안되는 사랑, 아무짝에 쓸모 없는 사막이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 아무도 없는 사막 동굴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여자와 사랑을 위해 나라를, 의리를 팔아버리는 처절한 남자가 기억에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많은 영화를 보아왔지만 그 영화처럼 사막이 이쁘게 그려진, 불륜이 안타까운 영화는 없었다. 그 영화의 원작 소설에 있다고 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번역한 박현주씨의 번역이라고 하니 안 읽어 볼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온다치는 시인이면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굉장히 아름답다. 몇 번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되는 긴 문장이 아니고 짧은 문장 7,8개가 하나의 문단을 이룬다. 짧으면서도 강력한 문장에서 의지가 느껴지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단, 마이클 온다치는 아름다운 문장을 시간의 순서대로 배열해 놓지 않았다. 현재 속에 과거가 들어 있고, 과거 속에 또 다른 과거가 숨어 있으며, 숨바꼭질하듯 주인공들의 숨결들이 여기 저기서 엉킨다. 그리고 책 속의 문장에는 그 흔한 큰 따옴표, 작은 따옴표도 없다. 언듯 보기에는 인물의 대사인지, 상황 묘사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데 읽다보면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사가 들려오는 신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생각과 대화의 교차속에서 얽혀진 시간,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가면서, 정성껏 읽다보면 어느 덧 이야기의 끝 부분에 도착하게 된다.

  책의 겉표지에는 "사막보다 깊은 서정, 전쟁보다 장엄한 로맨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 문구는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포스토에서 쓰였으면 좋았겠다.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서정보다는 서사가 돋보인다. 책을 옮긴 박현주씨는 "트롱프 뢰유"라는 예술 용어를 빌려와서 설명했는데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속에 소설적 픽션을 섞여져있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한 사람들의 로맨스가 도드라지는 소설이 아니라, 나라와 전쟁이라는 단어로 인한 아픔과 상실을 그린 소설이다.

  "사막의권리를 주장하거나 소유할 수는 없어. 사막은 바람에 불려온 천 조각으로 돌로도 눌러 놓을 수 없어, 사막은 캔터베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온갖 전투와 조약이 유럽 국가들과 동방국가 사이를 조각 조각 꿰매기 한참 전부터 수백 가지의 변화하는 이름이 붙여졌지.... 내 성을 지워버려, 국가를 지워버려, 나는 사막으로부터 그런 것들을 배웠지"라고 말하는 잉글리시 페이션트, 알마시의 입을 통해, 제국주의자들의 무식함을 비난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도인이면서 연합군이 되어 목숨을 걸고 지뢰, 폭탄을 제거해야만 하고 눈 앞에서 동료의 죽음과 수많은 양민들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킵의 운명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동병상련이었을까? 


   세계 2차 대전, 이탈리아의 오래된 수녀원 산 지롤라모에서 시작되고 인도의 한 가정 식탁에서 끝난 이야기는 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전신 화상환자, 남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 잉글리시 페이션트인 남자, 그를 돌보는 간호사 해나, 해나 아버지의 친구이면서 연합군의 첩자 노릇을 했던 카르바지오, 인도인이면서 연합군 소속의 지뢰제거 공병인 킵의 대서사를 곱씹어 읽노라면 전쟁으로 인해 생긴 인간의 상처의 치유방법이 떠오른다.

책장 한 쪽에 꽂아 두고 생각 날때 마다 한 구절 한 구절 외우듯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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