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시 - 시인 최영미, 세계의 명시를 말하다
최영미 / 해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중학교 1학년.
학교에서 시 외우기 대회가 열렸다. 시를 100개 인쇄하여 내어주며 며칠까지 외우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상을 준다고 했다. 외우는 단순한 작업을 잘 했던 나는 학교 오고 가는 시간,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시를 외웠다. 김현승님의 '가을의 기도', 조지훈님의 '승무', 유치환님의 '깃발', 김소월님의 '진달래꽃', '먼후일' 등 50여개의 시를 무턱대고 외웠다.

그때 외운 시는 교과서에서 만날 때도 있고,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시집에 있기도 했으며, 이쁜 편지지에 깨알같이 적혀있기도 했다. 반갑기도 하고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르고 외웠던 시이지만 지금도 입안에 빙빙 돌고 있으니 무식한 외우기가 내 영혼 어디에 시라는 흔적을 남겨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란 생각이 든다.

딱 거기까지다.  내 스스로 시라는 쟝르와 인연이 닿은 것은.

그 뒤로 이과에 진학한 나는 '시'라는 것은 국어 교과서 속에서만 만났다. 시험에 나오겠다 싶은 분석들만 열심히 외웠고 나 스스로 시를 감상한 것은 거의 없었다. 직장을 가지고서 책을 읽어도 시라는 것은 잘 읽지 않았다. 선물로 가끔씩 시집을 받긴 해도 책상만 스르르 넘길 뿐 진심으로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라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에 대해 무지한 채로 최영미 시인이 사랑하는 시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부탁했다.

  "시를 쓰지는 않더라도 인생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하기를...."

이라고 말이다.

그래,내가 시인이 될 것도 아니지만, 한 번 읽어나보자. 나의 삶을 보다 깊고 풍부하게 향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책장을 넘겨 차례를 보는 순간, 나는 딱 얼어버렸다.

앗! 워즈워드, 바이런, 예이츠, 릴케...이름은 들어 봤군. 투르게니에프, 에밀리 디킨슨은 소설가 아니야? 소설가들이 쓴 시도 있나 보구나.  그외 한국 시인 몇 명을 빼고는 아는 시인이 없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인의 시를 최영미 시인은 읽고, 느끼고, 번역하고 급기야 사랑까지 하는구나.
최영미 시인이 직접 번역한 시를 한 줄 한 줄 읽으며 그녀의 느낌을 읽어본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절의 뜻을 가르쳐주며,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감정선을 끌어 준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클린턴이 넬스 만델라 앞에서 인용한 시라는 "문서에 서명한 손"을 읽으면서 시를 사랑하는 대통령끼리 주고 받을 수 있는 차원높은 문화 교류에 탐복했고,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마야 안젤루의 "그들은 집으로 갔어"를 읽으며 솔직한 시를 읽으며 가슴에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인물의 시를 사랑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언어로 읽어도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해주어서 시를 모르던 내가 시를 가슴에 담게 되었다.
그녀의 사랑 고백에 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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