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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김민숙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그림과 글로 된 정보가 동시에 주어진다면 나는 단연 글로 된 정보를 먼저 머리속에 입력한다. 그래서 나에게 만화책은 별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보통의 소설처럼 글을 먼저 읽고 그림은 어쩌다가 한 번씩 쳐다보기 때문에 이야기의 짜임이 중요하고 그림은 중요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책을 선택할때 어떤 사람은 표지의 그림때문에 푹 빠져든다고 하던데 나는 항상 책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른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제목이 정말 신선하지 않나? 사람이 병이 났을 때 병원에 가면 먹어야 할 약들을 처방해 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책을 처방해줌으로써 우리의 병든 어느 부분을 고칠 수 있을거라는 희망속에 씌여진 책이리라 생각했었다. 그제서야 책 표지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카락 달랑 4 가닥 있는 남자, 역시 머리카락이 없는 여자아이, 어른 여자, 3명이 검은 옷을 입고 앉아 있고, 늑대로 보이는 시커먼 동물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 뒤로 다소 어리숙해보이는 남자도 보인다. 그들의 발 밑에는 책들이 나 뒹굴고 있다.
밝은 분위기의 제목과는 달리 음침하기까지한 표지그림때문에 책을 읽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제목을 믿어보기로 하고 책을 펼쳤다.
먼저 차례를 보자. 한마디로 웃기다.
20여개의 차례 제목이 전부 "정원이야, 숲이야?", "늑대야, 개야?" 등과 같이 둘 중 어느 것이 맞느냐는 물음으로 되어 있다. 차례 제목을 읽으면서 과연 뭘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각 부분을 읽게 되고,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전에게 뒷통수를 맞는 듯 멍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풋'하면서 웃음을 내뱉기도 하며, 진한 감동을 받기도 한다.
노부인이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내더니 창백한 남자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 읽으세요"
남자가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더니 겨드랑이에 책을 끼우고는 사라졌다. (P. 54)
일상에서 병든 사람에게 책을 읽게 하므로써 일상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그 책이 좋은 책이라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생각하게 만들고, 새로운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나중에 우리가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좀더 강하고 지혜롭게 만들어 줄거예요.(p. 56)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책을 통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현실에서 떨어져 다소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있다. 턱없는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도와주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세계로 안내해 주어 간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와 비슷한 문제를 현실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간접 경험이란 선경험으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도둑질하러 들어온 루크레시오가 엉뚱한 아이 칼비노에게 잡혀 아버지 역할을 하면서 끊임없이 상황을 묻고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칼비노가 정신병원 도서관에 데리고 간 덕분이었다.
정신병원 도서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칼비노의 여러가지 복잡한 가정사를 해결해 주고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비로서 "참 재미있는 책이란 이런 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많은 청소년들, 이 책을 읽고 위로 받고 위로하는 방법을 알게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