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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일은 우리겨레 최고의 명절 "추석"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맛난 음식을 나누고 그동안 못 나눴던 정겨운 얘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같은 장소에 모였지만 냉기를 뿜어내는 가족들도 있다. 가족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용서해주고 받아주고 이해해줘야하는데 가족이라서 더 용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잘 소통되어야 할 집단에서 소통되지 못하는 슬픔이 있을 때 반드시 비극이 생겨나는 법이다.
동구할머니는 동구 엄마를 싫어한다. 비쩍 말라서 힘 없어 보이는 것도 밉고, 6년동안 둘째를 낳지 못하다가 억세게 재수 없게 여자 아이를 낳은 것도 싫어한다. 아니, 그냥 매사 모든 행동을 싫어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는 집은 늘 시끄럽다. 4대 독자인 동구도 할머니는 마땅찮게 여긴다. 동구를 이뻐하면 동구 엄마가 어깨 힘주고 다닐까봐 늘상 입에 욕을 달고 동구를 대한다. 중간에 끼어 있는 아빠는 할머니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엄마를 때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동구에게는 무지 힘든 일이다.
동구에게 또 하나 어려운 일이 있는데 바로 책을 읽는 일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도 읽을 수가 없다. 멍청하고 덜떨어진 아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2학년때도 공부 못한다는담임의 말을 전해 듣고 동구의 뺨을 때렸던 적이 있다. 아버지가 겁나게 무섭다.
하지만 동구에게는 고마운 사람이 있으니, 동구의 착한 마음을 알아주는 담임 선생님이시다.
복잡한 가족 일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동구를 보면 선생님은 이렇게 달래 주신다.
"중요한 건,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될수도 있어. 그분들은 오랫동안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그분들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또 네가 아버지께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말씀 드리면 어린 아이가 주제넘게 나선다고 혼이 날지도 모르구. 그러니까 오늘 내가 알려주는 방법은 네 마음 속에 잘 묻어두고 이 다음에 네가 커서 실천에 옮기면 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아들이면 되면 어른들이 정말 기뻐하실거야."
집안 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동구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난독증까지 해결해 주셨으니 동구에게 구세주인 셈이다.
영원하길 바라는 좋은 관계는 이상하게 빨리 끝나는 것이 인지상정. 동구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기 바랬던 선생님은 광주사태속에서 사라져버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동생 영주마저 동구의 곁을 떠나게 된다.
결국 동구가 고향으로 할머니와 같이 떠나기로 함으로써 집안의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동구가 늘 마음속으로 그리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가정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어릴적에 가슴에 품었던 꿈을 이루고 사는 행복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굳센 의지도 있어야 한다.
동구는 지금 어린이지만 가정의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넉넉한 마음으로 가정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과 주리 삼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할머니와 시골 마을로 떠나가는 동구는 아름다운 정원과 멀어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아름다운 정원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80년대. 군인 쿠데타로 인해 국내 정치도 혼란한 시기였고,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합리적 사고 방식이 충돌하면서 가정의 문화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이 시기를 겪어온 우리 40대는 또 다른 문화 충돌에 마음 아파하면서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어린 동구가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우리들도 조금씩 조금씩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동구의 아름다운 정원. 가슴 속 그대로 남아있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