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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ㅣ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대한민국 사람중에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관공서, 은행 등 서류 작성 예시문을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홍길동",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드라마화 되어 우리 주변을 맴도는 인물, 홍길동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릴적 위인전, 전래동화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을 읽었던 것이 내 기억속의 홍길동의 전부였다. 그래서 큰 맘 먹고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허균의 홍길동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펼쳐서 읽는데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것 같은 구절들이 눈 앞에 쏟아지는 것이다.
" 소인이 평생 서러워하는 바는 대감의 정기를 받아 당당한 남자로 태었고,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입었음에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옵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오니, 어찌 사람이라 하겠습니까?"--P9
그렇구나,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예문으로 나왔던 부분이구나. 어렸을 때 배웠던 구절들이 잊혀지지 않고 나의 뇌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이에 대감은
"재상가의 천한 자식이 너뿐이 아닌데, 네 어찌 이다지 방자하냐? 앞으로 다시 이런 말을 하면 내 눈앞에 두지 않겠다" 라는 말로 홍길동의 갈등을 애써 눈감아 버렸다.
홍길동전에서 제일 중요한 갈등은 극복되지 않는 신분 문제에서 시작된다. 즉 축첩관행이 관습화되고 양반의 수를 조절하기 위해 적서를 구분하는 문제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다. 아버지의 존재를 감히 인정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종들로부터도 천대 받을 정도로 존재의 위기감을 느껴야만 했던 서자가 결국은 기존 사회 체제를 부정하고 불쌍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활빈당이 된다. 그러나 활빈당으로서 활동함에 있어 살리는 사람이 있으면 죽이는 자가 있으니,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조정이 아니다. 결국 홍길동 체포령이 떨어지지만 그냥 잡히면 홍길동이 아니지. 복제술을 사용하여 같은 모습의 홍길동을 8명으로 만들어 조정을 벌집 쑤시듯이 혼란스럽게 만든다. 현실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이 부분이야 말로 홍길동전의 압권이라 할 수 있겠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건드릴 수 없는 신분제도라는 거대한 막힘돌로 울분에 차 있던 수많은 백성들의 원한을 확 풀어버릴 수 있도록 소설은 환상적인 장치를 많이 해 놓았다. 기존의 왕조와 지속적인 마찰이 홍씨 가문의 멸화, 아버지의 병세 악화를 부추기자 결국 조선을 떠나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을 찾아가게 되고, 스스로 왕이 된다. 노비였던 어머니를 모셔와 대비로 신분을 격상시키고,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고 좋은 묘자리를 찾아 아버지를 모시며, 제사를 지내고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린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할 꿈을 소설속에서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줘,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진리를 많은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던 소설이다. 하지만 허균이 실제로 이 소설을 썼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한다. 허균이 유교적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하게 삶을 살았고, 인목대비 폐위에 앞장섰다가 사지가 잘리는 극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됨으로써 허균의 모든 저작물들은 금기 문서가 되는 바람에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이 몇 권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동안 금기시 되던 작품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조금씩 읽혀지고 인기를 얻어 목판본으로 만들어지고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들이 첨가되어 실제 허균이 썼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로 썼을까, 그리고 과연 한글로 쓰여졌을까 조차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누가 썼든지, 한글, 한문으로 쓰여졌든지 간에 조선의 중세 생활상, 개혁의지, 만민평등의식이 담겨있는 소중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펭귄클래식에는 서울지역에서 간행된 경판계와 전주지역에서 간행된 완판계, 2가지 소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경판은 간결하고 명확한데 반해, 완판계는 보다 많은 묘사장면이 첨가되어 풍부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가지를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참 즐거운 글읽기였다.
홍길동이 가진 만민평등의식,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요즘 시대 정치가들이 가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역시 고전이 주는 아름다움은 가슴을 오래 감동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