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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인사말, "사요나라". 헤어질때 쓰는 인사말이다.
처음 일본어를 배우러 갔을 때 사요나라라는 인사말은 내일 또 만날 사이에서는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오랫동안 못 볼 사이에 쓰는 것이 어감상 맞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시다 슈이치의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책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구석에 달라 붙어 있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진 표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슬픔이 느껴졌다.
이 슬픔의 정체를 얼른 알아내기 위해 책을 펼쳤다.
일전에 읽은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 오른다.
악인에서도 지나치게 극한의 상황을 배경으로 사람을 당황하게 하더니 이번 작품에서도 강간범과 강간 피해자라는 극한의 상황을 놓고 심리전을 펼치고 있어서 읽으면서도 다소 불편한 감정이 꾸역 꾸역 올라와서 읽는 내내 불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집단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 여성이 견뎌내야만 했던 멸시와 구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탈피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의 경멸까지 극복해야만 했다. 반면, 폭행의 가해자는 아무런 피해없이 주류사회에서 살아 갈 수 있었다.
집행유예라는 실형까지 받았지만 떳떳하게 취직도 하고 자리도 잡았다. 자신의 가해 경험이 회식자리에서 들춰지기도 했으나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나는 진저리가 쳐졌다. 피해자를 도와 주지 않는 사회, 아니 피해자를 살아 갈 수 없게 만드는 일본사회가 바로 우리 나라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시다 슈이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무런 상관없이 각자의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서로의 입장이 바뀌도록, 서로의 빈자리를 경험하도록, 결국은 사요나라라는 말을 남기도 용서하며 떠나도록 해 주었다.
과연 요시다 슈이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도록, 이해하도록 만들고, 그리하여 가슴에 뭉쳐 있는 덩어리 하나를 삭혀 준다. 유아 살인이라는 범죄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인간의 용서라는 커다란 주제를 제시해 준 멋진 소설이었다. 앞으로 사요나라라는 인사말을 들을때마다 아련한 아픔을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