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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시나 소설을 읽다보면 한 번쯤 베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별히 창작 의욕이 있었다기 보다 그냥 그 순간 그 문장을 내 인생에 끌어다 놓고 싶은 욕심이 원인이 될 때가 많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면 특히 더 그렇다.
신경숙 작가의 문장은 읽을 때는 굉장히 쉽게 읽히지만 막상 그것을 내가 써 낸다고 생각을 하면 무한의 고통 뒤에 생산되었을 것 같은 깊이를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그런 문장들이 600여 페이지에 걸쳐 쏟아져 있는 장편 소설 "깊은 슬픔"을 다 읽었다.
은서, 세, 완. 세 젊은 남녀사이의 사랑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시소 게임이 가능하다.
내가 너를 더 많이 사랑하나? 아니면 네가 나를 더 많이 사랑하나?
시소는 절대 평형을 유지하지 않고 어느 한 쪽으로 기운다. 너는 왜 나를 이 정도 밖에 사랑하지 않니? 그러고도 사랑이란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니? 라고 따져 묻는 시소게임.
은서, 완의 시소는 은서 쪽으로 기운다.
은서, 세의 시소는세 쪽으로 기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노력으로도, 운명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시소 게임이 우리 인생을 통째로 흔든다.
"마음 속에서 그림움이 사라졌고,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 것도 그립지 않으니 마음이 지옥이오" 라고 말하는 병든 시인처럼 평생을 기다리며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았지만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 버린 그 무엇이 우리는 힘들게 한다.
서랑이 전부 인 사람, 돈이 전부인 사람, 명예가 전부인 사람, 건강이 전부 인 사람들이 있다.
그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라지는 날, 존재해야한다는 의무감을 잃어버린다. 나를 놓아버릴 수도 있다.
누가 나를 손가락질 해도 나는 더이상 나를 잡을 수가 없는거다.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것 자체를 없애버려야겠다. 하나씩 하나씩 더 해져서 모두가 되도록, 어느 하나를 잃는다 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간다, 느낄 때도.
그러면 조금 마음이 나아지리.
지금 생생한 죄, 조금은 추억으로 들어가 이 삶 속에서 덜어지리.'
프롤로그의 한 구절이 괜히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