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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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문학동네

  나의 학창시절은 라디오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켰으며 라디오를 통해 가요을 알고 팝송을 알고 클래식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어제 저녁에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소재로 얼마나 재미나게 수다를 떨었는지 모른다. 공테이프라고 불렸던 녹음 가능한 테이프를 항상 대기시켜 놓고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가 나오면 녹음했다가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저작권 때문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레코드 가게에 가면 그 주에 히트곡을 불법으로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팔기도 했고, 원하는 노래의 제목만 들고가면 멋지게 녹음하여 주곤 했다. 그 음악이 우리들의 피난처였고 기쁨이였고 희망이었던 시대가 있다.
  오늘 나는 소설가 김중혁에게서 8곡의 단편 소설이란 음악을 선물 받았다.
그것도 cd나 mp3가 아니라 카세트 테이프 A,B면에 각각 4곡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김중혁이란 작가를 잘 몰랐다.
그래서 작년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봤을 때 한 번 빌려 볼까하다가 작가의 이름이 낯설어서 제자리에 꼽아 두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씨네 21이라는 영화 잡지에에서 작가 김연수와 번갈아가며 "나의 친구 그의 영화"라는 꼭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 쓴 책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씨네 21에 쓰여진 그의 글은 항상 미소 짓게 만드는데 그의 소설도 그럴까하는 기대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나는 얼마나 남아있나를 살피게 되었다. 남아 있는 장수가 줄어들수록 안타까웠다.
나는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몇 달 며칠을 두고 읽어야하는 대하 장편소설이면 더욱 좋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500쪽은 넘는 긴 템포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김중혁 작가의 단편은 단편이지만 장편처럼 긴 호흡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각 소설마다 음악과 소통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겠나 하고 혼자 판단해 본다.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전화기를 통해 서로의 피아노 음악을 나눴던 나와 비토와의 소통을 그린 "자동 피아노"를 읽을 때는 머리속에서 두 사람의 소통을 그려보느라 환상적인 분위기가 자꾸만 맴돌았다.
오래된 오르골의 메뉴얼 발견으로 인해 잊혀진 오르골의 음악이 흘러 나온다는 "매뉴엘 제너레이션"에서는 성실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음악을 통한 희망을 읽을 수 있었다.
DJ수업을 받고 있던 주인공이 음반 사냥 과정중에 한 남자의 음악 창고에 갇히게 됨으로써 지긋지긋한 음악에서 벗어나려 하다가 결국 음악으로 인해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그린  "비닐광 시대"는 생각하면 다소 멀미나는 설정이지만 주인공이 음악으로 자신을 치유해가는 과정이 참 극적이었다.
이 소설집의 제목인 된 "악기들의 도서관"은 교통사고 이후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기 위해 악기 가계에서 일하게 된 한 젊은이가 악기소리 쥬크박스를 만들어 악기 소리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제공한다는 줄거리로 한 시간을 살아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세요 라고 누군가에게 기도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유리 방패"에서는 대책없는 영혼의 자유를 가진 두 젊은이의 좌충우돌적인 행동속에 담긴 "지나감"에 대한 의미가 참 좋았다.

좋아한다면 두세 번은 시도해봐야지 라는 의미 심장한 구절을 선물한 "나와 B"의 소통도 멋졌다.

리믹스 [고아떤 뺑덕어멈]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무방향 버스"는 가슴 찡한 엄마와 아들의 소통이 담져 있다.

"엇박자 D"는 음치들의 세레나데라고 할 수있는 엇박자의 향연을 머리속에서 그려보는 동안 무척 행복했던 단편이었다.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현실이 지겨워지면 환타지에 살짝 기댈 수도 있고, 환타지가 지겨워지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는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나는 참 좋았다.



김중혁.

그의 이름을 이제 잊지 않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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