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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 피로 쓴 조선사 500년의 재구성
배상열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아이가 자라나면서 읽어야 되는 책의 종류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릴 때는 아주 간단한 단어로 된 생활동화, 창작동화, 과학 동화 위주로 읽다가 가치 판단이 가능해지면 전래 동화, 위인전, 역사, 과학에 관련된 책을 읽게 된다. 요즘 내 아이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의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낸 역사서를 읽고 있다.
아이 손에 역사를 쥐어줄 때는 내심 걱정이 많이 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정의롭게만 쓰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미리 말해줘야하나?
내가 그래왔듯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역사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내버려둘까?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의 결심은 후자를 택한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역사가 평가 받을지는 나 또한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반역, 패자의 슬픈 낙인", 이 책은 승자의 기록 이면에 숨겨져 있는 패자의 슬픔과 역사적 진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다.
TV 드라마도 역사물이 대세이고 특히 예전에는 감히 도전할 수 없었던 고대 삼국시대 이야기까지 픽션을 섞어가며 과감하게 얘기하고 있으며 출판계에서도 역사물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터라 온 국민이 역사 전문가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힙입어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더 많은 역사 관련 책을 읽은 까닭인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의 이면의 숨은 역사이야기라서 참 재미있었다.
딱딱한 역사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설명해 놓아 읽으면서도 피식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플라이급에도 미치치 않아 보이던 한명회가 슈퍼헤비급의 김종서를 한 방에 때려 누인 것은 룰에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룰과 스포츠맨쉽에 따라 정당하게 싸우는 파이터가 고환이든 눈이든 가리지 않고 가격하는 비열한 싸움꾼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가벼운 해설은 백마디의 역사적 서술보다 훨씬 더 쉽게 사건을 설명 해 준다.
400쪽도 채 안 되는 책 한 권에 500년 조선의 역사를 기술하려고 하니 부분 부분 좀 더 깊은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500년 역사의 가장 드라마틱한 부분에 대한 기술이므로 흡입력은 상당하다. 각종 사진 자료와 왕의 계통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계보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하여 놓았고, 각종 실록을 발췌하여 한글로 번역하면서 중요한 부분의 한자도 병행해 놓아 편집이 상당히 세련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박스형으로 정리된 주요 사실을 곳곳에 배치하여 그것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역성혁명으로 시작된 조선. 그 시작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위해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하였고, 선조의 정당성이 현재 자신 존재의 힘이 되는 까닭에 거침없이 역사를 날조했다고 한다.
대학 들어가서 충격 받으며 읽었던 "역사는 무엇인가"의 저자 E,H,Car는
"역사란 그 시대에 속한 역사가의 객관적이고 실증적이라고 판단하는 자기주관에 의해 해석되는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후손인 우리들은 주관에 의해 해석된 사건들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가장 진실된 사실을 알아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들의 의무는 무엇이고 우리 후손에게는 어떤 역사를 물려줘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한 재미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