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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 폴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루시드 폴의 음악을 들으면 내가 '착함'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루시드 폴의 음악을 왜 좋아하냐고 질문해 봤을 때 그의 잔잔한 음악 속에 "선함"이라는 코드가 맘에 들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기 때문이다.
루시드 폴. 그가 착한 사람인지 어떻게 아냐고? 모른다.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가 없었다.
그냥 그의 노래는 착하게 들렸다. 아니 나를 착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루시드 폴이란 가수가 공학도 그것도 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따고 그의 연구 결과가 특허까지 받은 대단한 공학도란 뉴스를 보게 되었다. 나는 신의 불공평함에 잠시 불평을 했다.
'노래만 하게 하시든지, 공부만 잘 하게 하시든지....누구에게는 두 가지의 재능을 주시고....'
이유없는 내 질투를 받아오던 루시드 폴과 그가 존경해 마지 않은 시인 마종기님이 만남을 갖게 되었다. 얼굴을 보는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메일이라는 매체를 사이에 둔 '기획적 만남'이었기에 "책"이라는 산물이 남게 되었다. 난 기획적인 만남이 아주 맘에 들지 않았다.
'뭐야? 책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만나게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사적인 만남이야. 공적인 만남이지. 그래서 나온 글이 과연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라고 딴지를 걸며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책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운전을 하면서도 책을 놓을 수 없어서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마다 운전대 위에 올려 놓고 읽기도 했다. 신호가 바뀌어도 모르고 뒤에서 빵빵거려야만 출발하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이 책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처음엔 참 부러웠다. 루시드 폴.
그가 존경해 마지 않는 시인과 어떻게든 인연이 닿았다는 사실만으로 부러웠다. 존경하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것.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희망이며 꿈이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우들과 메일을 주고 받을 수 있다면 참으로 황홀할 거라며 루시드 폴을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감동했다. 두 사람의 치열한 삶의 방식에 무한대로 감동 받았다.
조국의 민주화에 이바지 할 수 없다 판단했었던 마종기님은 도망치듯 미국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터를 잡고 의사로서 살아가면서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시를 썼다. 꾸밈없고 자연스런 인간의 감성을 노래한 그의 시는 많은 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하게 되고 루시드 폴도 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만해도 녹록치 않았을텐데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버리지 않기 위해 개인적으로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루시드 폴 역시 공학도로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가수 역할을 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억지로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부러웠다.
두 사람에게는 나를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
내가 힘들때는 힘내라고 위로해 주는, 나에게 큰 행사가 있을 때 잘 되길 바란다고 빌어주는, 내가 뭔가 결정했을 때 잘 한 거라고 칭찬해주는 그런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두 사람에겐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싶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자연스럽게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부러웠다.
단순한 기획에 의한 만남이었을지라도 한 사람의 가슴에 오래 담아온 세월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세월을 겸손하게 받아 주었기때문에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문에 대한 얘기, 인류의 사랑에 대한 얘기, 미래에 대한 희망, 나의 소용가치 등의 대한 이야기도 참 좋았지만 나는 이 두사람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일상으로 복귀가 계획된 일탈. 여행. 두 사람의 예술적 감성에 힘을 얹어주는 여행이야기는 나를 설레게 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였던 마종기 시인에 대해 알게 되어 감사했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음악의 창조자였던 루시드 폴을 더 좋아하게 되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