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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ㅣ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페터 헤르틀링 지음 박양규 옮김 비룡소
우리 주변에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외에도 한부모 가정, 조부모 가정이 늘어가고 있다. 사주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교통사고로 인해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고 사는 아동도 있고, 부모의 사별, 이혼으로 한부모와 살고 있는 아동도, 가정을 버린 부모로 인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삶을 꾸려가는 아동도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생활해도 가족간에 감정 대립이 있고 부적응 현상이 빈발하는 요즘 평범하지 않은 가정의 아동의 경우는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페터 헤르틀링의 할머니란 동화는 주인공 칼레가 5살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66살의 할머니와 가족을 이루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갑작스럽게 부모를 잃은 칼레의 슬픔, 아들을 잃은 할머니의 아픔으로 슬프디 슬픈 얘기가 될거라고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두사람은 담담하게 현실의 삶을 받아들인다.
칼레는 할머니의 틀니와 신경통을 할머니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후루룩 소리내어 커피 마시고 혼잣말 즐기는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혼자서 씻지 못하는 손주를 닦아 주며 "너는 칼레고 나는 네 할미야. 너는 어리고 나는 늙었다는 것 밖에 다른 이유는 전혀 없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 동화의 각 장은 적지전 작가 시점에서 칼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 할머니가 그 상황의 느낌을 정리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동들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한다는 독일 작가 페터 헤르틀링은 자식과 부모의 죽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할머니와 손주의 삐끄덕거리는 삶이 제대로 돌아가는 바퀴가 되어가는 과정을 어린 독자들에게 펼쳐 준다.
죽음이라니 얼마나 무거운 주제인가? 그것도 부모의 죽음.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페터 헤르틀링은 아침에 핀 꽃이 시든다고 말 하듯이 부모의 죽음을 그냥 배치해 놓았다. 칼레와 같은 어린이도 담담히 받아들이도록 말이다.
커갈수록 부모의 품이 그리운 칼레의 모습을 끝이 뭉툭한 크레파스로 터치하듯이 보여준다.
세상이란 바다는 예고하지 않는 파도를 우리에게 보낸다는 것을 조금씩 알려주는 듯 하다.
페터 헤르틀링의 작품은 그래서 좋다. 현실을 피하지 않고 현실 속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서 말이다. 다음 작품도 얼른 찾아서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