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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김연수 창비
공항 근처를 지날 때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가끔씩 보게 된다.
'어디서 오는 걸까?' , '어디로 가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 비행기 속에 나의 영혼을 올려 놓는다.
짧은 시간 이루어지는 유체이탈이지만 참으로 유쾌하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일탈행위이다. 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끄는 듯한 현실의 갖가지 책임감, 의무, 걱정 근심을 모두 남겨두고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무한 자유지대로 떠나는 행위이다. 하지만 마음 내킨다고 해서 아무 때나가 떠날 수 없는 것 또한 여행이다. 철저한 준비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배려가 있어야만 떠날 수 있다.
여행할 권리.
제목을 보는 순간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설레임이 먼저 다가왔다.
글 잘쓰는 김연수 작가는 어딜 여행했으며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겼다.
사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나에게 쉽지 않았다.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듯이 장면 장면을 외워야만 페이지가 넘어간다. 하지만 '청춘의 문장들'이란 수필은 참 재미났다. 어쩜 이렇게 멋진 표현, 감동적인 묘사를 할 수 있을까? 감탄에 감탄을 했었는데 이번 수필은 재미와 감동, 게다가 유머까지 겸비하여 책장을 넘기면서 소리 크게 웃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는 "국경"에 대한 집착, 애착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서남쪽 3면이 바다이고 북쪽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경을 걸어서 넘는다는 것은 '배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국경'을 넘어보려 무단히 애썼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테두리를 벗어나 보려는 그의 일탈행위가 참으로 부러웠다.
아버지의 고향, 일본의 나고야 하고도 차지미하하고도 카사하라까지 굳이 찾아간 작가는 어릴때 느꼈던 아버지와의 자신의 이질감을 극복하게 된다. 역시 국경을 넘어간 뒤에야 아버지의 삶을 민족이나 국가라는 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소설과는 달리 여기 저기 재미있는 표현, 단어가 정말 많은데 제일 많이 웃었던 여행은 독일 여행이다.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위한 여행이었을 독일 여행은 예술가을 위한 빌라 콘코르디아에서 지낸 시간들이다. 3개월정도 체류하면서 각국의 예술가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묘사했는데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질감, 동질감을 참 맛깔스럽게 표현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히피, 일본인 할머니 후사코의 멋진 말.
"모든 건 너에게 달린 문제이다. 네가 여기서 살고 싶다면 너는 여기서 살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경제력, 시간 등등을 따져봐서 안되겠다고 포기해 버린, 하고 싶어도 참고 가슴 한 쪽 구석에 꾹꾹 넣어둔 순수한 욕망을 자극하는 말이었다.
소설'굳빠이, 이상'의 취재 여행이었을 일본 도쿄의 여행.
비운의 작가 이상의 죽음과 관련된 동시대 작가, 박인환, 김수영등에 대한 묘사도 참 좋았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국경을 넘었던 이상. 자살에 가깝도록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고통, 한계점등이 새롭게 궁금해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언제라도 매혹 시킬 세개의 공간을 소개한다.
역, 휴게소, 공항.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이미 나의 현실을 벗어난 듯한 몽롱함에 빠지는 듯 하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이룰 수 있는' 여행에 대한 멋진 생각들이 매력적이다.
김연수. 그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로 씌여진 각종 시, 소설 등을 읽으며 감동을 받는 사람이다.
그는 각 나라의 언어를 깨치지 위해 가족과 긴 시간을 떨어져, 낯선 곳에서 지내야했고, 소설의 취재여행을 위해 숱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문학이란 가장 멀리까지 가본 자 만이 하는 행위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문학이 그토록 매력적인 것도, 그의 문학이 기대 되는 것도 월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자세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무궁한 그의 발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