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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학대나 고통을 받아왔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그의 아픔을 공감해주고 그가 일상의 삶을 회복할 때까지 옆에 있어주고 도와준다, 라는 형식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이 피해자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줄 수 있을까? 애초에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까지도 고민하게 만든 책이 있다, 『슬픈 호랑이』가 그 책이다.
『슬픈 호랑이』는 작가인 네주 시노가 과거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로부터 당했던 성폭행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어릴 적의 이야기이자, 증언, 에세이의 성격을 모두 가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초상화들, 2부는 유령이라는 제목이다.
1부에서는 '그의 초상화' 란 부제로 의붓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성폭행 사건 재판 당시 의붓아버지 측 증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강간한 사실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작가는 이러한 증인들의 서술로부터 시작하여 그의 주변 인물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고 생각 했는지 서술한다. 그녀의 친어머니는 그를 거짓말쟁이로 본다. 딸의 인생을 파괴한 범죄보다 그녀에게 한 그의 거짓말에 마음을 더 쓰는 모습을 보였다고 서술한다. 의붓아버지의 딸은 비록 그런 끔찍한 짓을 했지만 우리에겐 좋은 아빠였고 '나'에게는 적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 한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증언한 의붓아버지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말한다.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이와 관계를 맺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고, 나는 그녀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포식자인 호랑이는 그의 행위에 끝없는 정당성을 부여하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 작가 자신이 그리는 '그'의 초상화부터 '자신'의 초상화로 1부를 진행시킨다. 그녀의 삶을 짓밟았던 의붓아버지의 성적 학대부터 사람들의 진술, 그리고 화자의 증언과 수십 년 뒤에 이뤄진 고소 결심과 재판까지. 이 모든 고통의 과정을 화자는 담담히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재판 이후 성적 학대에 트라우마를 겪는 작가, 그녀가 딸에게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 범죄 행위에 대한 미학적 고찰, 학대 이후 피해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작가는 공포스러운 것을 가지고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은 그저 공포를 만드는 것뿐이라 이야기한다. 피해자들에게 역경을 듣고 회복 하는 것은 그저 가해자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요소일 뿐이며, 학대 행위 이후 회복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엄청한 일을 겪은, 각자의 증언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고 회복적 삶을 이끌어주면 되는 걸까? 나는 이 처절한 증언들을 읽으며 이런 행동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보통의 삶을 원한다고. 보통 사람처럼 시장 가고, 친구들과 놀고… 이런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걸 원할 뿐이라고. 제3자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지만, 피해자에게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것 자체가 가해 행위다. 그리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제3자가 공감해주는 행위는 피해자들에겐 그날의 공포만 더 심어줄 뿐이다.
물론 이런 끔찍한 일을 나와 모든 사람들이 아무도 겪지 않은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일상의 살아가는 피해자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책을 읽으며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으며 나의 지난 행동에 대한 반성을 끝없이 했다. '아이는 딴 곳에 혼자 있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싸맨 고민의 답은 이 문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답은 결국 이것이었다, '옆에 있어주는 것'. 진부한 답이 맞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들의 내면이 있는 '딴 곳'에 나도 옆에 있어주는 것.
그렇다면 왜 책의 제목이 『슬픈 호랑이』일까? 그건 책을 읽으며 스스로 꼭 생각해보길 바란다. 진짜 이건 글로써 다 담을 수 없으며 독자들이 각자 느껴야 한다. 반드시 스스로 책을 읽고 작가가 남긴 증언들을 분석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사유하고 찾는 과정도 예술이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 이 책은 @openbooks21 에게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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