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의 경우,특히 아버지 전봉덕은 한국 근현대사 격변 속에 모습을 바꾸며 출세의 길을 따랐던 친일 경찰 경력의 관료이자 법학자였고, 그런 까닭에 전혜린에 대한 후세의 시선은 더욱 곱지 않았다.

 반면 그가 아름다운 한국어 에세이를 썻다는 점과 뛰어난 번역가로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던 루이제 린저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인물이라는 점 등은 큰 의미를 얻지 못했다.유학 시절 겪어야 했던 가난과 노동의 피로도 마찬가지다.

김용언이 풀이했듯, 앳된 만삭의 몸으로 고단한 가사노동을 이어가고 번역과 집필 노동을 쉬지 않았던 전혜린에게 '땀과 노동'을 모른다는 비판이야말로 젠더에 대한 몰이해와 여성노동에 대한 의도적 폄하에 기반한 얘기일 것이다.여성이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돈과 자기만의 방'뿐만 아니라 가사와 돌봄으로부터의 해방 또한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174쪽)


전혜린,여성이 제대로 읽고 쓰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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