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는 장르가 혹은 시인의 언어가 한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고 구원하리라고는 거의 아무도 믿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삶에서 당대의 공동체적 삶까지 스며든 상처들은 끊임없이 불려나오고 있고 또 불려나와야 한다. 이런 다양한 상처들은 자기위안과 망각이 결코 치유해주지 못한다는 건 평범한 진리이다. 상처의 근원을 알고 불러내어 사유하는 일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터이므로. 그러므로 차갑고 또 뜨거운 시각으로 당대의 상처들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시인의 의무이리라고 믿는다. 일상의 여러 섬세한 현상과 감정들을 개인적 관점으로 토로하고 노래하는 일, 그리고 한 편의 시가 가져야 할 언어의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일 또한 마땅히 나름의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겠으나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개인적 상처가 사회적 상처로 승화되는 지점의 모색도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작은 울림이 큰 울림을 불러오는 시. 작은 목소리로 낮게 노래하지만 그 울림은 상처로 얼룩진 시대를 정직하게 불러내고 위무하는 시, 전쟁과 축제의 북소리같은 시를 그리워하는 건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 탓일까.뭍 생명들을 불러내기 위한 봄추위가 만만찮다. 그러나 머잖아 천지가 꽃으로 넘쳐날 것이다. 꽃보다 짙은 향기를 가진 시들도 함께.(264P)
시인의 의무이리라고 믿는다.꽃보다 짙은 향기를 가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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